「가톨릭 교회는 공기업인가?」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환갑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김근일(가명ㆍ베드로ㆍ54세)씨가 최근 갖게 된 의문이다.
올 가을 그가 아들의 혼배를 준비하면서 겪어야 했던 일이다. 사정상 일반 예식장에서 혼배를 하게 된 그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관면혼배라도 받기 위해 성당을 찾아갔다. 본당 사무장에게 필요한 서류를 물어보고 찾아간 그는 난감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사무장의 이야기를 잘못 알아들은 그는 관면 혼배에 필요한 호적등본대신 주민등록등본을 갖고 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를 포함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두 명의 증인 등 다섯 명은 사제를 만나 보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호적등본은 내 아들이 장가간 경력이 있나 없나를 알아보기 위한 것인데 오랫동안 이 성당에서 활동한 내 아들을 아는 사무실 직원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하고 따져 묻자 직원의 대답은 간결했다.
「구비서류가 준비되지 않으면 신부님과의 면담은 불가능하니 다시 서류를 준비해 오라」는 극히 사무적인 말 한 마디일 뿐이다.
김씨는 「이 본당에서 사목위원도 했던 내 얼굴을 봐서라도 이렇게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온 일행을 그냥 돌려보내서야 되겠느냐. 신부님 얼굴이라도 뵙도록 해달라」고 사정해보았지만 사무원은 묵묵 부답. 결국 아들과 며느리는 관면혼배도 못한 채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 냉담신자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같은 예는 김씨의 친형에게도 일어났다. 어려서 추운 겨울 새벽미사 복사를 서기 위해 귀가 얼어터지는 고통을 참고 매일 미사에 참석했다는 그의 형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냉담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자녀들과 부인이 성당에 나가는 것을 말리기보다 적극 권장했던 그가 관면혼배를 하지 않고 일반예식장에서 결혼한 그의 아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당 사제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사제는 대뜸 「관면혼배는 결혼 전에 하는 것입니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자 그는 「미처 몰랐습니다」라며 관면혼배를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그 사제는「안됩니다. 주교님의 강력한 권고사항이라 곤란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그는 자신의 냉담은 물론 자녀들 역시 냉담신자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물론 그 사제가 말 그대로 관면혼배를 주지 않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신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그에게 야단을 치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근일씨의 형의 반응은「그렇다면 그만 두라」는 식으로 냉소적이었다는 것이다.
김근일씨는「나와 우리 형의 경우처럼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이같은 경우에 교회를 등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앙생활을 얼마 하지 않은 이들은 오죽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행정이 관료주의적 공리업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관면혼배에 필요한 세례증명서와 호적등본이 교회법적으로 완벽한 혼배를 하기위한 서류라지만 그 본당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사람에게 서류가 구비되지 않았다고 사제와의 면담조차 거부당한 그로서는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다. 또 그느 「현대는 완벽한 서비스 시대」라고 전제하고 「본당의 행정조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신자들의 편에 서서 일을 해야지 행정위주의 권위를 보인다면 이로 인해 교회를 등지는 이들이 얼마든지 생겨날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바쁜 현대인, 그만큼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사는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신자이기에 관면혼배라도 하기위해 본당 문을 두드렸는데 구비서류가 없다고 냉랭하게 대하는 직원의 한 마디가 다시 피어오르려는 신앙심에 찬물을 끼얹고 만다.
물론 완벽한 혼배성사를 위해 교회가 요구하는 서류의 의미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처럼 본당 사무실 직원이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이일로 냉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근일씨가 「가톨릭은 공기업 같고 개신교는 서비스가 완벽한 사기업같다」라고 한 말에는 가톨릭의 관료주의적 행정, 권위주의적 행정이 신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케 한다.
김근일씨의 냉담이유는 그가 잘했다고 보기 이전에 세상에 열린 교회로서 봉사하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추기위해서는 좀더 탄력적이고 인간적인 교회행정이 모색되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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