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를 배우는 동안에는 곧 영세한다는 생각에 설레임과 기대가 컸습니다. 또 세례를 받는 날에는 여러분들이 축하와 격려를 해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해서 매우 즐거웠고 제 인생이 새롭게 펼쳐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영세 이후 사정은 제 기대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성당에 발길을 끊은지 만 3년이 되어가는 박동일(가명ㆍ34)씨. 영세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냉담중」이라는 사실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리 달갑지는 않다. 박씨가 가톨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클 선배중에 제가 잘 따르던 한분이 천주교 신자였어요. 호기심에 몇번 성당에 함께 가 보기도 했고, 그때부터 가톨릭에 관한 얘기나 정보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게 않게 됐지요』.
그러던 박씨에게 군대생활중에 몇차례 성당을 찾은 것 말고는 제대와 대학졸업, 취업때까지 성당을 다시 찾을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성당에 다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입사 2년만에 근무지를 타지로 옮기면서「마음 먹고」예비자 교리반을 찾았다. 그러나 처음 들어간 교리반에선 끝내 중도 탈락하고 말았다. 진급을 앞둔 직장생활, 아이출산 등으로 교리시간에 너무 많이 빠진게 원인이었다. 6개월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해서 그는 세례를 받았다. 결국 박씨는 세례재수생인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참 열심히 매달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막 피어나야 할 박씨의 신앙생활은 그러나 금새 내리막길로 치닫고 만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교리때 배웠던 내용들을 영세후 앞으로의 생활에 어떻게 연결시켜 나가야 할런지 매우 막연했습니다. 예비자때처럼 자상하게 가르쳐주거나 안내해주는 이도 별로 없었고, 이제 세례를 받았다는 생각에 웬지 이것 저것 묻는 것이 참 쑥스럽더군요, 주일 미사에 나와서도 허전하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박씨도 본당 레지오에 가입해 활동한 경험이 있다. 『수녀님이 다른 설명은 없이 그냥 단장님을 소개해주고 다음주부터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박씨가 들어간 레지오 팀은 가장 젊은 이들로 구성됐다고 했지만 모두가 적게는 5~6년에서 10년 넘게 연장자들 이었다. 서먹하게 생각되던 박씨는 결국 회사일 등 사정을 들어 탈퇴하게 된다.
박씨가 레지오 활동을 그만둔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한 때문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형식에 치우친 주회나 활동보고」등은 매우 답답함을 느끼게 했고, 2차 주회(酒會)에서 오가는 얘기들도 박씨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혹 다른 활동단체에 나가면 어떨까 싶어 둘러봐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성당에 나가서도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차츰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왜 이리 속이 좁고 옹졸한 놈일까하는 생각도 수차례 해봤습니다만 한번 뜸해진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더군요』.
설상가상으로 출장이 잦아지면서 본당 주일미사에 나가는 것도 어렵게 되고, 출장지에서 미사에 참례하는 것도 형식적이 되거나 아니면 아예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즈음 박씨는 매우 난처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번은 동료들과 얘기끝에 종교문제가 화제로 나왔어요. 제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중엔 개신교 신자도 있었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도대체 천주교가 어떤건지 조리있게 설명을 할 수가 없어 곤란했습니다. 교리때 들은 내용들을 떠올려 설명을 할려고 애썼지만 솔직히 제가 가진 교리지식으론 제대 로 설명이 안되죠』.
박씨는 자기도 답답한 마음에 『처음으로 천주교 신자라고 알려진 것이 창피하고 후회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성당에서 공지사항이나 유인물 같은 것을 보면 교회에서 하는 교육이나 피정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제가 할 곳을 찾을 때는 눈에 띄지 않더라구요. 다 하는 사람들만 하는 것 같고, 또 그런 사람들만 계속해서 모이는 것 같고…』
박씨는 자신의 경험을 볼 때 『영세를 분기점으로 해서 전과 후가 너무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이 둘을 이어주면서 계속해서 신자들을 이끌고 교육시키는 일들이 크게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가족이나 주위에 신자가 드문 박씨 같은 경우는 특히 영세후에 방치되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박씨는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제가 레지오를 그만둘 때도, 성당에 뜸할 때도 누구 한사람 속 시원하게 얘기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느끼는만큼 그분들도 저를 대하기가 서먹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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