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통일 독일의 사례는 거의 철의 장막에 갇혀 있는 북한 사회를 이해하고 향후의 변화방향을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작업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일성 사후 국내에서는 김정일 체제의 장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 대한 논의는 예외없이 극히 취약한 정보와 지식의 토대 위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전체로 하면서 이 글에서는 몇 가지의 기초적 정보와 사회경제적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 일반적 요인들은 토대로 북한사회의 실상과 변화의 방향을 조감해 보기로 한다.
북한의 여러가지 징후로 볼 때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오늘날 북한주민의 생활수준은 60년대 중반의 상황보다도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60년대 북한은 인구 1200만명에 식량생산은 5백만톤을 상회하였고, 사회보장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었다. 그 후 거의 한 세대 가량이 경과한 오늘날 인구 2500만의 북한에 생산된 식량은 3백50만톤 가량으로 자급자족에 필요한 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즉 김정일체제는 열악한 경제를 물려받았다. 열악한 경제를 물려받았다.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체제가 그동안, 최소한 외형적으로나마,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일성의 「카리스마」에 기인하는 것이다.
북한은 1987년부터 93년까지 3차 7개년 계획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패했다. 1987년부터 89년 3년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미만에 불과하였으며, 그마저 90년대 들어서면서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이 초기에 활발한 공업국가로 변모하는 듯하다, 이렇게 까지 경제가 몰락한 이유는 사회주의체제의 경제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봐야 한다.
더이상 유휴노동력이 존재하지 않는 발전단계에 이르게 되면 노동생산성의 향상없이 경제의 상향운동은 차단되기 마련이다. 이때 기술진보에 의한 생산성 상승은 「시장경제」라는 압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교조적/도덕적 자극만으로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사회주의국가들이 체제전환을 시도하거나 경제개혁을 도입하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북한의 김정일 체제는 여러가지의 부담을 안고 출법하였다. 그중에서도 김일성 체제에 대한 사회적 안전성의 원천이 되었던 카리스마의 결여는 신체제에 대한 인민의 지지강도를 약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북한경제의 정체상태가 겹쳐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새 지도부는 분명히 경제적 개방을 확대할 것이다. 경제의 논리 자체가 다른 대안을 허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한핵 문제의 해결전망은 그러한 개방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북한의 내외상황은 분명히 북한의 개방을 촉진시킬 것으로 전망되지만, 결국 북한의 제반 정책방향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이 대북정책에 있어 냉전적 사고와 자세를 견지하는 경우 북한 역시 냉전적 구도로 선회할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한국의 대북화해 정책은 북한사회의 개방을 가속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족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남북한 관계를 정립하는데 있어서 북한사회의 폐쇄성을 주어진 여건 내지 상수로 간주해서는 안되며 우리의 대북정책 방향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정책의 일관성은 견지되어야 한다.
향후에도 북한의 경제개방은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방이외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나 경제개혁을 동반하지 않는 개방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의사결정의 분권화, 이윤 및 외환의 보유권, 가격기구의 자율화 등과 같은 개혁없이 개방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최소한의 경제이론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거나 개혁의 부작용을 감내할 정치적 수용자세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개방정책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84년 이후 광범위하게 확산된 일련의 개혁조치들에 의하여 뒷받침되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나, 여타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경제개혁이 기존의 정치 엘리트에게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동구 및 (구)소련의 개혁의 「비극적」부작용을 관심있게 추적해온 북한의 지도부가 갖고 있는 「딜레마」도 여기에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