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액수의 금액이 신문지상과 방송에 오르내리면서 가난한 할머니의 쌈지 주머니에서 나오는 그런 의미의 자선은 이제 그 의미를 찾는것 자체가 무색해 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바로 이 1,2천원의 작은 사랑나누기 이야기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라자로 돕기회」
오는 12월 19일로 설립 25주년을 맞는 라자로 돕기회(회장=정창현)는 힘도 권력도 없이「사랑」하나만을 믿고 살어온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다.
국내 나환우의 삶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이 사랑나눔 이야기는 나환우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한 사제와 몇몇 신자들의 작은 만남에서 출발했다.
1970년 12월 19일. 미국에서 막 귀국한 이경재 신부의 환영식 모임에 참석한 고 류홍렬(라우렌시오) 박사, 고 양한모 선생, 고 김세중 교수, 김남조 시인, 옹윤숙 시인 등 40여명은 이신부의 제안으로 나환우를 위한 후원회를 결성하게 된다.
당시는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아주 미약하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멀리하던 나환우에 대한 이들 돕기회의 활동은 후원회라는 의미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라자로 돕기회의 전반적인 관리와 운영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평신도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운영해오고 있다. 초대회장 류홍렬 박사를 비롯해 2대 엄익채, 3대 김성진, 4대 봉두완, 5대 박찬종, 6대 정창현 회장에 이르는 회장단이 모두 평신도로 구성되어있다.
『라자로 돕기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저소득층과 신자가 아닌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0여년이 넘게 후원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지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라자로 돕기회가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성 라자로마을 원장 이경재 신부는 얼굴도 알리지 않은채 20년이 넘게 후원해 오는 사람들에 의해 하느님의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적으로 표현했다.
1970년 당시 40여명으로 시작된 라자로 돕기회가 25년이 지난 현재, 국내외에 4만5천여명(외국인 5백여명포함)의 후원회원을 가진 대규모 후원 단체로 성장한 것만 보아도 이신부의 기적이라는 표현은 무리가 아니다.
이신부는 라자로 돕기회 설립 당시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익숙해 있던 레지오 조직에 착안, 「팀」으로 표현되는「소공동체」단위로 후원 회원을 구성했다. 「팀」단위로 운영되는 돕기회는 기존의 포괄적인 후원회 운영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규모 단위로 결성된 후원회 조직의 연결을 통해 바로 후원회원 개개인의 신앙발전과 무리없는 돕기회 운영이 가능했다.
1970년대 당시에는 국내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때라 라자로 돕기회는 외국 해외 교포들의 원조에 많은 의존을 해야만 했다. 라자로 돕기회와 이경재 신부는 투신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외국 교회를 상대로한 후원 회원 확보에 열성을 보였다.
특히 이경재 신부는 일본을 1백33회나 방문했으며 이를 통해 일본의 대표적 지성「소노 아야꼬(曾野綾子)」여사를 비롯 일본내 후원자들과 23년간의 교감을 이루어 왔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돕기회에는 국내 후원자가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라자로 돕기회가 초기단계부터 추진해 온 직장과 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후원회 결설이 효과를 보기 시작한것이다. 이러한 팀제 중심의 후원회 운영은 지장과 각 사회 단체안으로의 선교와 복음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기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작은 사랑들은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나환우 복지의 획기적인 발전도 바로 이시기에 이뤄졌다. 살기가 어려웠던 시기에 이뤄진 사랑나눔 이었던 만큼 그 시기의 뜨거운 사랑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값진 것이였다.
이러한 라자로 돕기회의 활성화는 돕기회 회원 몇몇의 거액 금전 기탁과는 거리가 멀다. 1~2천원의 작은 정성들이 10~20년 동안 지속되는 이런 사랑의 기적, 이것이 바로 라자로 돕기회의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라자로 돕기회는 국내 나병 연구기관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외국으로 그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1970년대 당시 외국으로부터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외국 시설을 대상으로 나눠주는 역(逆) 원조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1989년부터 부분적으로 외국 원조사업을 벌여오던 라자로 돕기회는 1991년, 중국 연변의 나환자 요양원에 1천7백만원상당의 의료기구를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외국 원조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라자로 돕기회는 이후 1994년까지 중국ㆍ몽골ㆍ베트남ㆍ필리핀ㆍ인도네시아ㆍ루마니아 등지에 7만여불의 성금을 전달했다. 외국 원조사업은 라자로 돕기회가 매년 5월경에 개최하는「그대 있음에」라는 자선음악회의 수익금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라자로 돕기회의 해외원조활동은 사랑을 받은 이가 사랑을 베푼다는 당연한 진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있는 것이다.
나병에 대한 다양한 홍보 사업은 물론 나환우 진료활동, 해외 나환우 원조 등 라자로 돕기회의 활동상은 그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신부는 라자로 돕기회의 의미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금전적인 문제해결에만 매이지 않았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환우의 고통을 주변에 알리고 나환우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중심축에 서 있었다는 점, 그리고 나병에 대한 국민적 인식전환을 촉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신부는『라자로 돕기회의 이러한 성장은 말없이 기도와 희생으로 일관해온 돕기회의 역대회장들과 일반 후원회원의 희생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라면서『라자로 돕기회 사랑 나누기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인 후원회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사반세기동안 이어져온 라자로 돕기회의 활동은 이제 2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옛날 그 젊은 라자로 돕기회 회원들의 자녀들이 이제는 신규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바통을 넘기며 받으면서 계속해서 달리는 라자로 돕기회의「사랑 마라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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