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북한 정권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몇 개의 기둥을 꼽는다면「김일성」「주체사상」「폐쇄주의」「감시와 처벌의 국가기구」등이다.
그런데 이런한 요인들에 변화가 일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 정권유지에 가장 중요한 기둥이었던「김일성」이 쓰러졌다. 이념적 기둥인「주체사상」도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됨에 따라 주민들 사이에 물질주의, 개인주의가 성행하면서 쇠퇴하고 있다. 외부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북한체제 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해왔던「폐쇄주의」도 점차 흔들리고 있다.
북한체제를 뒷받침하는「감시와 처벌의 메커니즘」에도 누수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미 암시장, 뇌물, 절취 등 부정부패가 성행가기 때문에「사회통제기구」가 매수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처한 위기적 상황과 김일성의「위대한 영도력」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가?
북한에는 사회주의 사회안에 또 하나의 사회가 생성되어 이중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사회주의적 집단주의적 공적세계가 개인주의적 사적세계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주민들이 사회주의체제에 대항하여 형성한 의도적인 변화라기 보다는 현실에 적응하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북한 주민들의 가치의식 변화와 일탈행위의 확산은 단순히 사회적 병리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사회변화의 지표로 보아야 한다.
북한의 사회구조에서는 위로부터의 엄격한 통치체제에도 불구하고 지도부에서 통제할 수 없는 구조적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급구조의 측면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착취계급은 청산되었지만 산업화중의 결과로 북한의 신중간계급인「인텔리계급」이 성장함으로써 북한은 이론적, 정책적 모순에 빠졌다. 인텔리계급 문제는 북한 체제의 비효율성을 심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북한 주민의 인성에서도 이중성이 성장하고 있음이 발견됐다. 공식적 지배이데올로기의 이면에 또 하나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인성이 존재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직업적 선호 유형이 있어서도 이중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북한사회의 육체노동자는 사회적 수치감을 느끼고 있으며 반면에 정신노동자는 사회적 우월감 또는 선민의식을 느끼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경제생활에서도 이중성의 경향은 매우 현저하다. 북한 주민들은 80년대 후반 들어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하게되자 암시장이 발달, 개인소유자주의가 성행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주민들간에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적 의식이 확산됐다. 이전에는 북한 주민의 지배적 가치는 정치적으로 인정받아 공적 부문에서 출세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돈을 버는 것이 우선적인 가치로 확산되고 있다.
주민들의 정치적 영역에서도 이중성이 생성되고 있다. 북한에서도 동구 및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배이데올로기가 퇴색하고 일정한 방향의 정치적 자율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볼때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사회에서 제2사회(Second Society)가 형성되었듯이 북한에서도 제2사회가 형성되고 있다고 불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가치의식이 개인주의적이며 체제일탈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게 한 여러 요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적 이념과 인간 본질간의 괴리에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경쟁 및 상호작용, 시만사회와 신민사회간의 경쟁 및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보아야한다.
결과적으로 북한에서는 경제개방을 하더라도 의식변화가 촉진되고, 경제개방을 안하더라도 현재의 의식변화 추세를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변화는 대내외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북한주민들의 밑으로부터의 추동력에 의해 진전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탈냉전 시대 국제사회의 대세를 이념의 종언과 경제논리의 지배, 국제화 및 자유화의 흐름으로 특징짓는다면, 북한의 지도부도 변화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그 동안의 쇄국주의에서 야기됐던 북한의 특수성이 퇴색하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특성에 보다 근접하는 사회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남북한 통일에 근접해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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