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이스라엘 백성이 수백년동안 기다렸던 메시아가 드디어 다윗의 고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다윗의 고을은 베들레헴으로서 베들레헴은 다윗의 출생지이며 고향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었습니다. 유다는 본래 약소국의 미미한 존재였지만 다윗에 의해서 주위의 여러나라를 제압하여 통일국가를 이룩하였고 그래서 만방에 그 위세를 떨쳤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또 신앙심이 깊었던 왕이었으며 진정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던 겸손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후대의 임금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거나 부패한 왕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솔로몬도 타락한 삶 때문에 자식의 대에 이르러서는 나라가 두동강이 나버렸고 그리고 차례로 멸망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그래서 못난 왕들 때문에 실망하고 또 실망했으며 망조가 든 나라의 꼴을 보면서 백성들은 다윗과 같은 새 왕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 신앙의 시초가 됩니다.
그후 여러 예언자가 등장하여 메시아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처녀의 몸을 빌어 오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오지 않았습니다. 수백년동안 기다려도 다윗처럼 강력하고 힘있는 왕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오셨습니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을 때 그 분은 당신 백성을 찾아 오셨으며 바로 그 이유때문에 메시아를 알아본 자들이 없었습니다.
오늘 천사가 목동들에게 그랬습니다. 『오늘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아 얼마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습니까. 드디어 구세주께서 오시고 드디어 메시아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왕이 마굿간으로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같은 사실 때문에 속았으며 그러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들 안에 그리스도를 영접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아이러니였습니다.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하느님을 배척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현세적인 의미에서의 왕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자로만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눈이 닫힌 채 엉뚱한 메시아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지만 안믿습니다. 오히려 무시하고 깔봤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 마음을 다윗의 고을로 만들고, 또한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탄생하시지 않습니다. 다시말해 작고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수백번 오신다 해도 그 인생 안에 탄생하시지 않습니다. 성탄이 와도 성탄인 줄을 모르고 새 날이 와도 새 날인 줄 모릅니다.
어떤 노름꾼이 노름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지난 날의 자신의 잘못된 삶을 고백하면서 웃다가 울었다가 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울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은 이랬습니다. 『예수님꼐서 나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는 정말 다시 태어났으며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서 탄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탄생하시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변화 되지 않는다면 신앙은 무슨의미가 있으며 또 성탄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이 기도를 하고 또 얼마나 많이 봉사를 했느냐 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보다 일차적인 문제는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는 겸손과 그리고 회개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회개가 있다면 어떤 살인 강도도 구원받습니다. 십자가 옆의 강도처럼 그야말로 논스톱으로 천당에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로가 많고 또 열심히 살았다 해도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그 겸손과 회개가 없다면 주님이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갑니다.
막말로 아니꼬와서 안 들어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셨듯이 우리도 그처럼 내려가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춰서 회개하는 자 안에서 특별한 의미로 태어나십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세상을 구하러 오셨다 해도 그가 진정 작은 마구간이 되지 못한다면 주님은 올해도 그 안에 탄생하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는 불행합니다. 믿음의 기쁨과 수고가 물거품이 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작은 자(베들레헴)가 되고, 또 우리 모두 낮은 자(마구간)가 되도록 합시다. 그때 우리는 아기 예수님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참되게 영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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