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도록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추억이 퇴색되지 않도록 마음 깊숙한 곳에 각인(刻印)해두고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추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인생을 아름답고 값진 것으로 생각한다. 성탄절을 맞아 45년간을 사제로 살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운 추억의 선물 보따리를 수없이 받아온 서울 대교구 은퇴사제 김정진 신부를 만나 그중 「1948년 겨울 성탄절」이라 적혀있는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보았다.
사제생활 45년동안 20년을 신학생 양성을 위해 신학교에서 헌신했고, 나머지 20년은 본당에서 사목자로 선교 일선에서 활동하다 지난 90년에 은퇴, 5년째 서울 명동성당에서 은퇴사로 생활하고 있는 김정진 신부.
김신부는 은퇴생활 5년을 여느 기간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영성지도와 고해신부로 바쁘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신부는 매일 10시경이면 명동성당 인근에 있는 남산에 오른다. 건강을 위한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고해성사와 영성지도를 받기 위해 찾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자신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다 확연히 드러내 보여주고자 매일 자신을 돌아보는 수심(修心)의 자세로 산에 오른다고 한다.
사제관에서 기자를 만난 김정진 신부는『세월이 흐를수록 자꾸만 성탄절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사목일선에서 본당주임으로 활동하던 당시만해도 신자들 모두가 영신생활에 치중해 성탄절을 준비했으나 오늘날은 거꾸로 사회 분위기는 성탄절을 조용히 지내려하고, 신자들은 외향적인 행사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신부는『몇년전만해도 성탄전야가 되면 7시나 8시에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성탄 예술제를 시작으로 흥이돋으면 어른들도 나와 자기 장기를 선보이고 흥겹게 기쁨을 나누다 자정미사가 있기 한시간전 모두 성당에 모여 구세사를 봉독하고 묵상하는 예비기도 시간을 가졌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좀처럼 볼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김신부는 또『자정미사후 본당에서 준비한 국수와 떡국 등 여러 음식들을 온 신자들이 함께 들면서 예수 성탄 축하 인사를 나눴는데 요즘은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 공동체 모두가 함께 진정으로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자리를 보기가 무척 힘들다』고 씁쓰레했다.
김정진 신부는『성탄은 어린이들과 가정, 세상의 모든이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축제인데도 불구하고 함께 그 기쁨을 나누는 아름다운 풍속들이 사라지고 있어 무엇보다 아쉽다』고 말했다.
김신부는 부제서품을 앞둔 신학생으로서는 마지막 겨울방학인 1948년 성탄절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북이 고향이라 방학이 돼도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김신부는 6.25때 순교한 동창생 고 이완성 신부의 고향「은이」에서 겨울방학을 지냈다고 한다.
은이에서 성탄전야미사후 성모님과 성요셉 아기예수와 삼왕으로 분장한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아기 예수를 썰매에 태우고 새벽이 지새도록 각 가정을 돌며 성탄 노래를 부르고 축복을 빌어주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결핵에 걸려 입원하는 바람에 부제품과 사제품을 못받을뻔 했던 김신부는 노기남 대주교의 배려로 1년을 휴학하고도 동창들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김신부는 지금도 자신이 병중에서도 사제로 서품될 수 있었던 것은 그해 성탄절에 내려주신 하느님의 은총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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