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복음 4장 16~30절의 본문은 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신 이야기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시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루카 4,16-17). 이사야서 본문을 읽으신 후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루카 4,20-21).
이 장면은 예수님 시대, 곧 기원후 1세기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행하여진 안식일 예식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먼저 성경 본문을 히브리어로 읽으시고 곧이어 아람어로 번역해가며 가르치셨을 것이다.
사실 제2 성전시대 팔레스티나의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아람어는 일상적인 구어(口語)였기 때문에 유다인들의 회당 예식에서는 히브리어 성경이 아람어로 번역되고 해석됐던 것이다. 이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서(61,1-2, 58,6)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주님의 은혜로운 해, 곧 희년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며 당신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이사야서의 본문은 레위기 25장 8~22절의 희년에 관한 규정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은혜는 희년법에서 잘 드러난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종이 자유로워지고, 빚이 탕감되며, 눈먼 이가 다시 보고, 감옥에 갇힌 이가 석방되는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메시아로서 당신의 일을 분명하게 제시하신다.
예수님의 희년 선포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가진 것을 공정하게 나누며, ‘가난’ ‘배고픔’ ‘억압’ ‘탐욕과 폭력’에 대항해서 일하도록 초대한다.
즉 예수님은 희년이 요구하는 바를 실제로 실천하도록 부르신다. 따라서 희년의 실천은 예수님을 뒤따르는 그리스도인의 과제이다.
이와 같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그들을 치유하며 자유롭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루카복음서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이 잘 드러난다(루카 6,20, 7,22, 14,13.21, 16,19-20, 22-23 18,22, 19,8, 21,3).
그러나 루카는 가난하고 배고프며 슬퍼하는 것을 그리스도인 실존의 이상적인 상태(사도 2,43-47, 4,4)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즉 루카는 가난을 이상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의 반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루카 1,48.52-53, 16,25).
사실 초대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대함’(generosity)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친교 안에서는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34).
그리고 루카복음 4장 18~19절은 신약성경에서 생태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본문 중의 하나이다. 사회 정의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생태 정의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희년의 가르침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해방과 치유는 창조 세계에 대한 돌봄에 상응한다. 여기에 예수님의 희년 선포가 가지는 우주적 정의의 차원이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은 땅과 모든 나머지 창조 세계를 위한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물질적인 부를 나누기를 거부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대함을 거절하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희년 선포가 나쁜 소식이 될 것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