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게 생긴 ‘옹기’는 슬프고도 아름답다. 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신앙선조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그들의 절절했던 신앙 고백을 그대로 담아내는 유물이기 때문이다. 산 속에서 숨어살며 교우촌을 이뤘던 그들은 천주교를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집안이 몰락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짓거나 숯, 옹기 등을 만들어 내다파는 고된 일을 맡아했는데 이러한 일들은 당시 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들이 생계만을 위해 기계적으로 옹기를 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체 안에 작은 십자가를 그리고, 넝쿨 문양에 한 획을 그어 십자가의 형태를 드러내기도 했으며, 유약을 발라 굳어지기 전 손으로 십자가 문양을 새기기도 했다. 후대에는 포도나무, 비둘기 등을 그려 넣거나 임마누엘이라는 문구를 적은 옹기도 출토되고 있다.
신앙선조들은 자신들의 암호를 담은 비표뿐 아니라 옹기로 다양한 일을 했다. 교우들이 보초를 서며 ‘포졸들이 오고 있다’는 위험신호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옹기호각, 누구도 알아볼 수 없도록 작게 만들어 등잔 밑에 넣어놓은 성모자상 등은 어떠한 서슬 퍼런 박해도 그들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 포졸들이 들이닥칠 때도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표시 였던 소중한 옹기를 버리고 갈 수 없어 짊어지고 도망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전국 수많은 성지의 홈페이지에는 인근 교우촌의 교우들이 대부분 옹기를 구웠다는 사실이 소개돼있으며 그 가운데는 가마터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박해시대가 끝나고도 신자들은 조상의 뒤를 이어 옹기를 구웠다. 실제로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가 쓴 일기를 보면 신앙의 자유를 찾고도 옹기를 구우며 교우촌을 이루고 살아가는 신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 또한 선조들의 뒤를 이어 옹기를 구웠다. 충청도 연산지방 교우촌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유복자로 태어나 옹기를 구우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한 배경에 따라 김 추기경의 아호도 ‘옹기’다. 그는 생전 옹기에 대해 절절하고 애틋한 심정을 표현하며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옹기는 특별합니다. 오래된 옹기의 뚜껑을 열어보면 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게 있습니다. 무자비한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지켰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습니다. 곡식도 담고 오물도 담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그릇이었습니다. 오물조차 기꺼이 품어 안는 사람, 세상에는 옹기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소망을 담아 제 아호도 ‘옹기’로 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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