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시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없었던 이 시절에 신자들은 남모르게 자신의 신앙을 전하기 위해 암호(暗號)를 사용했다.
1세기 로마의 박해를 피해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숨어든 카타콤바에는 물고기 모양의 표시가 있다. 물고기란 뜻의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 아들 구세주’의 첫머리 딴 글자로 물고기 그림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다른 신자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암호였다. 우리 신앙선조도 자신들의 신앙을 박해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암호로 표현하곤 했다. 우리 신앙선조의 암호는 다름 아닌 ‘십자가’였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 화성의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도 뛰어난 아름다움과 조각의 섬세함으로 근세 건축 예술을 대표하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의 서쪽 벽에서는 수많은 십자가를 볼 수 있다. 또한, 방화수류정 자체도 8각 지붕을 기본으로 남북에 합각을 더 세워 십자형으로 설계돼 들보가 뚜렷한 십자가 형상을 지녔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형태는 바로 이 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의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약용은 서학(西學), 즉 천주교를 상징하는 서쪽 벽에 십자문양을 새겨 대범하면서도 은밀하게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증거했다.
옹기에 새긴 십자가 역시 신자들을 연결해주는 비밀스러운 끈이었다. 신앙선조는 옹기 뚜껑 안쪽에 크게 십자 문양을 새기기도 했고 쉽게 드러나는 바깥 면에는 넝쿨무늬 등을 그릴 때 한 획을 더 그어 십자가를 만들기도 했다. 옹기는 포졸들의 감시를 피해 아무 집이나 허물없이 드나들 수 있는 수단임과 동시에 신자들이 서로 알아볼 수 있는 표지가 됐다. 신앙선조는 이렇게 구운 옹기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산을 내려가 박해를 피해 도망가면서 잃은 가족을 수소문하거나 교회의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박해의 땅인 조선에 들어오면서 십자성호로 생면부지의 조선 신자들을 알아봤다. 베르뇌 주교는 1856년 바닷길을 통해 조선에 입국할 당시의 상황을 ‘작은 배 한 척이 우리에게로 향하여 오며 선원들이 손을 하늘에 올리고 십자성호를 많이 그으며 우리 신호에 응답했다’며 ‘과연 그들은 신자들이었다’고 편지에 기록했다.
또 다블뤼 주교의 기록에는 십자성호로 숨은 신자를 찾아낸 신앙선조의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한 사람은 신자를 찾아 행상이나 거지로 변장하고 많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거나 동냥을 했다. 그 사람은 동냥을 받으면서 성호를 긋곤 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노력을 축복하시어 한 번은 그가 신자를 만나게 됐다. 이 신자는 그가 성호를 긋는 것을 알아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그들은 서로 신자인 것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계속하여 연락을 취할 수가 있게 됐다.’ 우리 신앙선조에게 십자성호는 가장 온전한 신앙고백임과 동시에 신자임을 알아보는 암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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