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의 이번 조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뤄졌다.
「생명과 가정에 관한 의식 및 실태」는 가톨릭 신자와 일반인 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으로 현대 가정이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 즉 가정폭력, 혼인/이혼/재혼, 청소년.자녀교육, 성과 출산, 그리고 피임과 낙태를 비롯한 생명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다른 하나는 가톨릭 신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가정과 관련된 「천주교 신자의 신앙생활」 실태를 조사함으로써 앞서 다룬 생명과 가정에 관한 의식 조사와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사목적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 생명·가정 의식 및 실태
부부싸움 자녀폭력은 신자가 더해
인공피임하는 비율도 더높게 나와
우선 「생명과 가정에 관한 의식 및 실태」 조사에서는 △일반 가정 △혼인 △노인 △청소년·교육 △생명 △성 △출산·자녀관 △반생명적 행위 등 총 8가지 범주로 나눠 조사됐다.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가톨릭 신자와 일반인의 생명과 가정에 대한 의식과 실태가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곧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들이 실제 신자들의 의식과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향후 교회가 생명과 가정에 대한 교육과 실제 신앙 생활에서 교회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사목적 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화 부족, 무관심, 경제난
먼저 일반 가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반인과 신자 모두 가정생활에 대해 높은 만족감을 표시했지만(일반인 71.5%, 신자 73.3%) 많은 가정이 대화가 부족하고 가족간의 무관심과 경제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신자 가정의 부부 싸움과 자녀에 대한 폭력이 일반인에 비해 더 높다는 것이다(부부싸움-일반인 57.9%, 신자 60.9% 자녀 폭력-일반인 20.1%, 신자 25.2%).
혼인 문제에 대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은 일반인과 신자가 비슷한데(일반인 30.6%, 신자 28.6%), 다행스러운 것은 이혼 불가에 대한 의견이 신자가 비교적 높다는 사실이다(일반인 44.7%, 신자 54.2%). 하지만 신자 가정에 이혼한 사람이 있는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일반인 10.6%, 신자 9.3%).
노인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전체의 7%에 이르러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노인 부양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미미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에서 일반인의 34.6%, 신자의 36.3%만이 어떤 어려움에도 노인을 부양하겠다고 응답해 노인 부양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청소년(15~19살) 중에서 신자의 가출 비율이 일반인과 거의 비슷하며(일반인 7.9%, 신자 8.1%), 청소년 탈선의 가장 큰 원인은 「가정 교육 잘못」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일반인 57.6%, 신자 58.4%).
생명 의식 저조
전반적인 생명 의식이 저조하며, 신자와 비신자간의 윤리의식과 실천에 차이가 없다는 점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 및 실천과 관련된 문항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간 생명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하는 질문에서 대부분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부터라는 인식이 다수였고 일반인(60%)보다는 신자(69.7%)가 다소 높았다.
하지만 교회가 수정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된다는 가르침을 공식 입장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충분한 수치가 아니며, 더욱이 지난 92년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임신(수태)되었을 때』라는 응답이 84%였음을 보면 수정란이 생명이라는 인식이 10여년만에 크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의 시작 시점에 대한 인식은 낙태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간 배아 복제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낙태를 죄악으로 보는 것은 수정으로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생명이 탄생한다는 입장에 바탕을 둔다. 또한 초기 단계의 인간 배아에 대한 실험이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도 수정으로부터 생명이 시작된다는 입장에 근거한다.
“인공피임 금지 수용 못해”
자연 및 인공피임, 낙태, 시험관 아기, 안락사, 사형제도, 자살, 배아복제 등에 대한 견해들도 비록 신자들이 약간 높은 수치를 나타냈지만 크게 차이가 보이지는 않고 있다.
특히 신자들이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 중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인공 피임의 금지로 나타났다. 즉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신자들 중 35.8%만이 인공 피임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시했고 64%는 인공피임이 반생명적인 행위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시험관 아기에 대해서도 절반 정도인 51.6%만이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성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혼전 성관계」는 신자는 찬반 의견이 비슷하지만 일반인은 3분의 2가 긍정적인 의견을 보여 일반인이 신자보다 성에 대해 문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 혼전 성경험은 일반인과 신자가 큰 차이가 없었다.
“낙태는 개인 문제” 인식 심각
출산과 자녀관에 대한 조사에서 먼저 결혼 후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신자와 일반인 모두 절반 정도로 나타났다. 그런데 낙태의 경우, 부분적으로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고(일반인 94.5%, 신자 87.6%), 낙태를 찬성하는 이유로는 낙태가 개인의사에 맡겨져야 하는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일반인 54.2% 신자 60.7%)이 절반을 훨씬 넘었다.
실제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도 적지 않았는데(일반인 40.1%, 신자 34.2%), 이들 중 두 번 이상 거듭 낙태를 한 여성이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3번 이상 낙태를 한 여성의 비율이 신자들 중에서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일반인 9.9%, 신자 11.6%).
피임을 하고 있는 비율도 신자가 일반인보다 더 높았으며(일반인 50.6%, 신자 55.0%). 교회가 권장하는 자연적인 방법(배란법, 기초체온 등)을 사용하는 비율도 신자들이 오히려 더 적었다(일반인 15.2%, 신자 14.6%).
사형제도 폐지의견은 높아
안락사를 부분적으로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일반인 86.9%, 신자 77%). 주목할 만한 것은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 의견은 신자들 사이에서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일반인 40.4%, 신자 64%). 이는 가톨릭 교회가 꾸준하게 사형 폐지 운동을 추진해온 결과로 분석된다.
▨ 천주교 신자의 신앙생활
‘가정문제에 본당 도움안돼’ 74.6%
‘자녀 유아영세 시키겠다’ 60%뿐
여기에서는 가정 문제, 생명과 가정에 대한 태도, 신앙생활 실태 등 세 가지 범주에 대해 조사했다.
먼저 가정 문제에서, 신자의 60%만이 자녀의 유아영세를 반드시 시킬 것이라고 응답하여 현대 사회의 자유주의적 풍조에 상당수의 신자들도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녀가 타종교를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도 78.6%가 찬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가정기도를 거의 안하는 가정이 64.1%에 달해 가톨릭 신자로서의 기본적인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본당이 가정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도 74.6%에 달해 신앙생활과 가정생활의 분리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생명과 가정에 대한 태도에서는 신자의 절반 정도가 교회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 중에서 인공피임을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부관계를 좋게 하는 데 신앙생활이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신자는 14%에 불과했다. 이는 교회가 신자의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수치이다.
신앙생활 실태에 대해서는, 본당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신자가 59.2%에 달해 교회 생활이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당 활동을 매우 열심히 하는 신자는 33.2%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가장 활동적인 30대의 경우는 21.2%만이 교회 활동에 적극적이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냉담 중인 신자도 30대가 22.6%로 가장 많았다. 성서를 전혀 읽지 않는 경우도 30대가 34.1%로 가장 많았다. 여기에서 30대에 대한 사목적 대책 마련이 절실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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