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주일 복음은 땅에서 들려주신 주님의 마지막 명령과 약속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 감격의 순간에도 주님을 ‘의심’하는 사람이 더러 있더라는 민망한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 말에 자존심이 팍, 상하는데요. 마태오 복음서만 기록하고 있는 ‘경비병들의 매수사건’이 기억나는 까닭입니다. 그날 주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로부터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그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사건 조작을 위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뭉쳤는지를 알려주기에 그렇습니다.
당시 ‘종교인’들의 위선을 생각하고 그들이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혈안이었던 지를 백번 고려해 보아도 자꾸 솟아나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힘듭니다. 이런 마음으로 들춘 성경에서 경비병들이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기적의 현장에서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는 표현까지 만나니, 아연실색할 지경입니다. 단돈 몇 푼에 양심을 팔고 진리를 수월히도 왜곡해 버리는 우리의 뒷모습 같아 마음이 참담해지는 겁니다. 값싸게 세상의 지론에 ‘설득’ 당하는 믿음의 모습들이 아른대어, 마음이 아픈 겁니다.
그럼에도 남들은 모두 휴식을 취하며 곤히 잠들어 있는 밤중에 눈을 부릅뜨고 ‘무덤을 지키는’ 험한 일을 해야만 겨우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그들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많은 돈’을 건네며 ‘딱 한 번’ 거짓말을 해 달라는 유혹이 얼마나 거절하기 어려웠을지 공감해 봅니다. 더해서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도록 조처해 주겠다는 단단한 약속을 들었을 때, 매우 고마워 눈물겨웠을 것도 같습니다(마태 28장 참조).
그런 의미에서 더욱 오늘 복음이 전하는 주님의 뜻이 선명하게 펼쳐져 보입니다. 세상 물질의 유혹과 일신의 안녕을 미끼로 한 타협들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불쑥불쑥 다가와 마음을 흔드는 꼬드김도 우리가 겪는 현재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앞서 승진하고 먼저 출세하기 위해서, ‘딱 한 번’만 눈을 감고 양심을 저버리라고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배신하고 의리를 저버리고 진리까지도 왜곡하여 진실을 외면할 것을 권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인 까닭입니다.
이 야릇한 유혹의 시련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오늘도 지극히 추상적이고 상당히 비현실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제자들의 손에 현찰을 쥐여주지도 않고 세상에서의 안락을 보장해 주지도 않으셨던 그분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일할 것만을 당부하십니다. 단지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뜬구름같은 약속만 건네주십니다. 그날 경비병들이 얻었던 것들에 비하면, ‘이게 뭐야’ 싶습니다.
이 때문에 더욱 그 말씀에 온전히 순명했던 제자들의 삶에 경탄하게 됩니다. 그분의 명령을 말씀대로 지켜냈던 그들, 그 명령을 살아내기 위하여 재산을 버리고 죽음과 맞섰던 그들,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고난을 당했으나 절대굴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이 존경스럽습니다.
그 희생을 바탕으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생명의 길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은총의 열매로써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한 세례인이며 구원을 받은 은총의 사람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길을 잃은 영혼에 빛을 비출 수 있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돈의 유혹에 걸려 넘어진 병든 영혼을 되살리고 세상의 소리에 쏠려 진리에 귀먹은 가엾은 영혼을 일깨우며 속상하고 억울해서 통탄하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인입니다.
복음의 입이 되고 복음을 전하는 발이 되어 모든 이에게 그분을 느끼도록 이끄는 일은 결코 버거운 짐이 아닙니다. ‘세상 끝날까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자리를 찾아가는 우리의 수고로운 삶에 그분께서 늘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분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분을 전하는 삶이야말로 천국을 살게 합니다. 주님을 모신 그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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