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의 예수님을 단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하나의 ‘운동을 시작하신 분’(movement initiator)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분은 여느 역사상의 위인들처럼 정치 권력자도 아니었고 큰 군대를 일으키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실천하셨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은 바로 하느님 나라 운동이었다. 마르코 1장15절은 그분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한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던 기원후 1세기 팔레스타인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그들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단지 세상 종말이 다가왔다는 말씀으로 이해하였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다이즘은 구약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유다인 예수님도 구약성경에 깊이 뿌리내리고 계셨다. 동시에 그분은 놀라운 ‘새로움’(newness)을 가지고 계셨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현재와 미래에서의 하느님의 통치를 가리킨다. 사실 바빌론 유배 이전에는 하느님 통치의 현재적 차원이 강조되었다면, 유배 이후에는 그것의 미래적 차원이 부각되었다. 어쨌든 이것은 하느님이 통치하는 그 어떤 장소를 의미하지 않고 그분이 통치하신다는 사실(fact)을 뜻한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기원후 1세기의 팔레스타인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다. 로마 황제가 통치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 로마제국의 꼭두각시인 헤로데 대왕의 아들들이 통치하였다. 결국 많은 유다인들은 이러한 로마 황제와 헤로데 가문의 통치를 받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 즉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날을 열망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 주제인 하느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황제와 헤로데 가문이 다스리고 있었던 상황에서 하느님의 나라, 곧 하느님의 통치는 새로운 질서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느님의 나라는 예루살렘의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한 당시 유다이즘의 종교적 체제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길, 새로운 가치를 의미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가치를 뜻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메시지는 당시 유다인들에게 하나의 ‘도전’(challenge)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의한 인간의 사고방식, 가치관, 행동 양식뿐 아니라 사회적 체제와 구조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의제’(agenda)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뒤엎는 것으로서 ‘전복적’(subversive)이다.
예수님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도전하고 비판하실 뿐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하나의 ‘대안’(alternative)으로 제시하시고 실천하셨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추상적인 개념도, 개인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그리고 단지 사후(死後)에 벌어질 어떤 사건도 아니었다. 그분이 시작하신 일은 새로운 질서와 가치가 실현되는 대안적 공동체 운동으로써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 차원’(social dimension)을 가진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 안에서 현존하는 하나의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는 생태적 차원에서 정의와 평화의 실현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느님 나라 운동은 새로운 공동체 운동이었다. 이 대안적 공동체는 예수님의 정신과 가치가 실현되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올바른 관계가 실현되는 자리였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실현되는 공동체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의 공동체는 수직과 수평적 차원의 올바른 관계가 다시 새롭게 회복되는 자리였다. 따라서 그분이 시작하신 대안적 공동체 운동은 다름 아닌 올바른 관계의 회복 운동이었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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