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소박하며, 자녀 둘 다 장성했음에도 아직도 신혼처럼 사는 부부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부들에게 본의 아니게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서도 늘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부부 프로그램에 다녀온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얼마 전 그 부부와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짓궂은 질문을 했습니다.
“두 분, 제 앞에서는 이렇게 사랑하는 듯하지만 집에 가면 싸울 거죠?”
이런 저의 질문에 남편이 먼저 “좀 싸우고 싶기도 한데, 아내가 싸움에 협조하지 않아서 못 싸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이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주고, 따라주니 싸울 건수가 없어요”라고 합니다.
작전(?) 아닌 작전에 실패한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어디서 나와요? 신앙인가요?”
이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결혼 전에는 열심한 신자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이 사람 만나서는 그냥 좋아 보여서 결혼을 결심했어요. 그런데 신혼여행 때, 이 사람의 참모습을 본 것 같았어요. 그 후로 이 사람에 대해서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깊은 신뢰가 있어요.”
“아니, 무슨 일인데요?”
“신부님, 저는 결혼식 하던 날, 정말 설레고 갓 결혼한 신부로서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지요. 우리가 결혼할 때는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는 것이 어려울 때였는데, 기어이 제주도로 갔었어요. 제주도에 도착해서 2박 3일 동안 이 사람이랑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호텔에 들어가는 순간, 남편이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거예요. 그래서 뭐 하느냐고 물었더니, 근처 성당 사무실 전화번호를 찾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전화번호는 왜 찾느냐고 물었더니, 주일미사 시간을 알아본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데, 얼마나 김이 샜는지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한 이 설레는 시간, 우리 둘 만의 신혼의 꿈과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제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거예요. 돌아오는 날, 우리는 근처 성당 11시 미사를 함께 드렸지요. 그런데 미사 중에 문득 ‘이 사람,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책임감이 이토록 강한데, 눈에 보이는 나에게는 얼마나 더 잘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사람에게 기대어 다짐했어요. 정말 행복하게 살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이 사람을 굳게 신뢰하겠다고. 그러다 보니 이날 이때까지 살아온 것 같아요.”
가장 소중한 순간에 어떤 중요한 기억을 서로에게 남기는 것, 그다지 별스럽지 않을 것 같지만, 그 기억은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의 화석으로 남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혼인하던 날도 그랬겠지요. 그 소중한 날, 행여 지나칠 수 있는 주일을 지키러 가는 두 분의 발자국, 그리고 두 사람의 인생길에 하느님께서 사랑의 힘, 믿음의 끈으로 묶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직했을 두 분의 모습. 생각만 해도, 앞으로도 세상 그 어떤 신혼부부보다 아름답게 살아갈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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