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를 닮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서 찾는 힐링
▲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면서 치유의 기적을 체험했다
이 사건에 대한 성인은 이렇게 고백했다. “죄 중에 있었기에 나는 한센병 환자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 가운데로 인도하셨고, 나는 그들에게 자비를 행하였습니다.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무렵에는 나에게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도리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프린치스코 성인 유언 중)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치유다.
유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성인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 힘겨웠지만,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신의 나약함과 직면하고 순종했다. 그러자 새로운 빛이 그를 찾아왔다. ‘치유’의 빛이었다.
성인이 체험한 치유의 기적은 예수의 삶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맨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처참함 앞에서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앞에 ‘부활’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릴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인답게 그가 살아온 치유의 삶도 비슷한 형태로 발견된다.
이런 성인의 영성은 현대교회에서도 똑같이 체험할 수 있다.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하나가 삶의 위기에 직면한 이들을 위한 영적돌봄 전문가 양성 교육프로그램, CPE(Clinical Pastoral Education)를 통해서다.
1920년대 미국교회 내 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2007년 영적돌봄을 통한 건강한 사회 건설을 위해 국내에 창립됐다. 교육은 학생들이 서로의 영적돌봄 경험을 나누고, 동료들과 수퍼바이저로부터 조언과 비평을 받으면서 영적돌봄가인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기서도 중요한 부분은 ‘성찰’ 즉 ‘머무름’이다.
성프란치스코 CPE센터장 박재한 신부는 “나약함에 직면하는 순간을 허가해주시는 분은 주님”이라면서 “치유가 됐다면 주님의 빛이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CPE는 하느님 체험을 이뤄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유혹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에게 ‘성찰’은 쉬운 이야기가 아니기에 교회가 동반자가 돼줘야 한다는 것이 박 신부의 의견이다. “CPE의 비전이 ‘내 친구도 안다’ ”라고 소개한 그는 또 “사람들과 함께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그의 영성이 담긴 CPE 역시 대중들에게 다가갈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항상 세상 안에서 영성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성인이 생활하던 은둔소는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외부가 잘 보였다. 성인은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내 안에 머무는 것이 곧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고,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전한 박 신부는 “자기 전 단 몇 분이라도 침잠하며 자신과 대화를 하는 내적 성찰을 하면 우리가 찾는 힐링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다재다능한 힐데가르트 성녀의 영성에서 찾은 힐링
▲ 힐데가르트 성녀는 죄를 저지르고 용서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영성으로 다가갔다.
다양한 신비주의의 역사에서 볼 때 힐데가르트는 분명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의 끝까지 그는 수많은 비전을 보았고, 이런 체험을 글이나 그림의 형태로 뛰어나게 묘사했다. 기쁘면서도 고통스러운 신비주의적 체험들을 창조적으로 표현한 그의 영성 바탕에는 신학적 초월성과 내재성의 문제를 하느님과 또 한편으로는 세상 안에서의 연대를 통해 연결된 사랑의 영성, 신학이 있다.
이 사랑의 영성은 고통과 수난을 강조하고, 세상을 죄악시하던 경향과 대비해서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한 분이 창조에 담아준 사랑을 강조한다. 즉, 힐데가르트 성녀는 죄에 대한 두려움에 기초한 영성이 아니라 기쁘게 살고 육체적인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 성화의 기본조건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성녀에게 있어 세상을 창조하고, 완성할 수 있도록 이어가고 구원하는 근원은 ‘사랑’이었다. 죄를 저지르고 용서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성녀는 ‘사랑’의 영성으로 다가간다. 사랑이 부족한 현시대에 적절한 영성이 아닐 수 없다. 신비주의가로서 영성가로서 많은 기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성녀에 대한 오해와 불신은 뿌리 깊다. 힐데가르트 수녀의 보석 치료법, 자연치료요법 등 실용적인 부분과 상업적인 관심이 성녀에게 집중되면서 오히려 종교적 영성은 모습을 제대로 평가되지 않아 연구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 성인으로 시성되면서 교회 내의 관심이 힐데가르트에게 옮겨가고 있다. 특히 전인적인 영성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데가르트 성녀의 영성은 통합적 영성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힐데가르트에 대한 연구를 이어온 정홍규 신부(오산자연학교장)는 ‘힐데가르트 영성 기행’을 통해 “성녀 탄생 900주년을 기념해 피정 프로그램, 성경 묵상, 명상 등 사목 영성 프로그램이 국외에서 활발하게 개발됐다”면서도 “아직까지 한국에는 연구가 부족하지만 여러 관점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 눈높이 맞춤형 김수환 추기경의 영성에서 찾은 힐링
1996년 마이클 잭슨이 내한할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그를 만났다. ‘왜 그런 사람을 만나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지만 김 추기경은 마이클 잭슨을 만나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은 후 그가 청소년들을 잡아끄는 이유를 이해했다. 김 추기경은 그 자리에서 그저 묻고, 듣고, 배웠다. 최근 발매된 차동엽 신부의 「친전」에 소개된 이 에피소드에서도 단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의 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추기경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는 누군가를 가르치기보다는 같은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보듬어 줬다. 항상 겸손했고 따뜻했다. 이때문에 추기경과 대화를 하고 나온 이들은 한결같이 치유를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이것이 김 추기경의 영성이 가지고 있는 ‘힐링’의 힘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진정성과 믿음을 가지고 사회적인 가치 실천에 앞장섰다. 또한 가장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던 예수의 모습을 따라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소외받는 이들의 편에 섰다. 그러면서도 절대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치유 받을 수 있었다.
힐링형 리더라고 평가되고 있는 김 추기경은 생전에 남긴 말은 ‘힐링’을 좇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세상의 구원은 자신도 남과 같이 상처 입고 가난하면서도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삶, 존재까지 남을 위해 바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