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갓 사제가 되었을 무렵, 어느 병원에 첫 미사를 갔다가 신학교 다닐 때 존경하던 선배 신부님이 환자복을 입고 그 미사에 나오셨습니다. ‘아니, 저 형이 병원에!’
미사 후 환우들과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선배 신부님을 만나 인사했습니다. 그랬더니 피곤한 얼굴의 신부님은 간 수치가 높아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습니다. 병자 봉성체까지 다 끝낸 후 그 신부님 병실로 병문안을 갔습니다.
선배 신부님이 입원한 곳은 2인실 병실로, 신부님은 저를 반갑게 맞이했고 우리는 이러저러한 신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병실 문이 열리면서, 깡마른 체구의 핏기 없는 검은 얼굴의 어떤 꼬마가 엄마랑 함께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그 꼬마는 응급환자였고, 어차피 선배 신부님은 다음날 1인실로 옮길 예정이었기에 그날 오후는 서로 양보하면서 본의 아니게 한 병실에 있게 됐습니다.
다시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저의 눈길은 꼬마에게 계속 갔습니다. 곁눈질로 봤더니 온 팔에 링거를 맞아 더 이상 주사를 놓을 곳이 없을 정도였고, 모자를 벗는데 동자승 머리처럼 삭발이었습니다. 직감으로 많이 아픈 꼬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꼬마의 엄마는 담담하게 아들을 간호했고, 담당 의사 호출이 있는지 병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때다 싶어 그 꼬마에게 ‘얘야, 안녕! 에고, 좀 아프구나. 그래도 잘 참고, 잘 견디네. 나라면 투정만 부렸을 텐데’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저의 인사에 꼬마는 몸을 제 쪽으로 돌리더니 옆으로 고개 인사를 했고,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좀 웃겼는지 꼬마는 까만 얼굴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방긋방긋 웃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지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꼬마가 모처럼 웃었는지 병실 문 앞에 있는 꼬마의 엄마도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시간이 됐고 선배 신부님께 인사드리며 나가는데 그 꼬마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또 언제 오세요?”
저는 선배 신부님의 절친한 보호자라도 된 듯, 혹은 뭔가에 홀린 듯 “아저씨 내일 또 올 거야”하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꼬마는 좋아라 웃으며 ‘내일도 자기를 꼭 만나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반응에 엄마는 놀랐는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면서, 아들에게 “아저씨 바쁜 분이야. 그러지 마”하며 아들을 달랬습니다.
실은 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와야 할 것 같은 마음속 책임감이 느껴지면서 선배 신부님에게 ‘내일 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그 형도 깔깔대고 웃으며 ‘내일 또 보자’ 했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오는데, 하얀 치아를 보이며 웃는 천진난만한 꼬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 썰렁한 농담에 그토록 반응하는 꼬마는 어디가 아픈 걸까’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병실을 걸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꼬마 엄마가 저에게 종종걸음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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