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에서 술은 물, 우유와 함께 중요한 마실 거리였다. 술 중에서도 포도주가 으뜸이었다. 이것은 지중해변의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빵을 먹으면서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 빵과 포도주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밥과 국 정도가 되겠다. 포도주를 마실 때 물을 반 정도나 그 이상 희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포도주에 꿀과 같은 감미료를 첨가하기도 했다.
포도주는 포도즙을 발효하여 만든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7월 초부터 여름 동안 포도를 수확한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9월에나 마실 수 있다. 왜냐하면 포도를 수확하여 포도즙을 만들고 발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포도주를 만들기 위하여 포도즙을 짜내는 곳이 포도주 틀이다. 포도를 놓고 짓밟아 즙을 내는 커다란 디딤판이 있고, 짜낸 포도즙이 흘러 들어가는 큰 통이 있었다. 새 포도주란 발효되지 않거나 발효의 초기 단계에 있는 갓 짜낸 포도즙을 가리킨다. 완전히 발효된 포도주는 오늘날의 저장 방법처럼 오래 저장하지는 못해도 여러 해 저장할 수도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마실 거리를 담는 용기 중에는 가죽 부대가 있었다. 이것은 동물의 껍질이나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소나 낙타도 가능했지만 주로 염소나 양의 껍질이 사용되었다.
부대를 만들기 위한 가죽은 동물의 목에서부터 살과 분리하는데 몸통 전체 위로 잡아 당겨서 벗겨냈다. 그리고 껍질을 무두질하여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 껍질의 겉과 속을 뒤집고, 동물의 목과 네 다리로 생긴 다섯 개의 구멍 중에서 네 개를 묶어서 막았다. 이렇게 만든 가죽 부대는 가볍고 새지 않아, 일시적인 포도주 저장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새 포도주는 발효가 진행되면서 팽창하게 된다. 그래서 묵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게 되면 가죽이 터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은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마르 2,22)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새 포도주의 발효로 인한 팽창을 묵은 부대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새 부대의 신축성과 유연성이 새 포도주의 발효로 인한 팽창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의 의미이다.
한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쇄신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새로운 상황과 소통할 수 없다. 고루한 전통에 사로잡혀 새로운 변화의 표징을 읽지 못하는 태도는 새 포도주의 팽창을 감당하지 못하는 낡고 묵은 부대와 같다.
현실에 대한 변화의 시도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 중에는 변화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태도가 있다.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변화로 인해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일상의 편안함이 깨어지고, 자기가 지금 가진 많은 기득권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부정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도는 경직되고 완고한 사고방식에서 나온다.
따라서 변화의 출발점은 경직된 사고를 유연한 사고로 바꾸고, 닫힌 마음을 열린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낡은 사고의 틀과 닫힌 프레임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엄청난 팽창력을 감당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유연한 사고로, 새로운 사고의 패러다임에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나’의 세계에 갇혀 경직된 우리의 삶을 ‘나’ 밖의 세계로 열려 있는 삶으로 바꾸고, 하느님과 다른 사람, 그리고 창조 세계와 단절되어 불통하던 우리네 삶을 유연하게 소통하고 신축성 있게 개방하는 삶으로 변화시키도록 초대하신다.
이 변화를 위한 결단은 발효하고 팽창하는 새로운 시대의 표징들을 담아낼 수 없는 낡고 묵은 부대를 과감히 버리고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것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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