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시기, 네 개의 초는 구약의 4000년을 가리킵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구약의 긴 기다림, 그 가운데 구원자가 태어났을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하고 노래했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대림시기를 맞아 주님은 멀어졌던 우리를 가까이에 부르십니다. 대림을 통해 새롭게 삶을 정비하겠다는 다짐의 촛불을 켜며, 우리를 구원해줄 구세주가 ‘세상의 빛’으로 다시 오심을 기쁘게 기다려야겠습니다. 아멘.
■ 심지에 불을 붙이며
수원교구 이주민 사목센터 안양 엠마우스에는 누군가 진심 어린 부탁을 할 때면 언제든지 ‘네’를 외치는 이가 있다. 2003년 두 번 만남에 한눈에 반해, 남편 최성규(50)씨에게 시집온 필리핀 여성 쥴리타 타마요 마그폭(Julita Tamayo Magpoc·40)씨다.
큰 아이는 초등학생, 작은 아이와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세 아이의 엄마. 다른 한국 아줌마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사는 그에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봉사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남편이랑 아이들을 일찍 밥 먹여서 배웅해주고 나면 봉사활동 하러 집을 나서요. ‘돈 많이 벌어야지’ 그런 생각 없어요. 마음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면 복 받아요. 하느님이 제 진심 다 알아주시고 복 내려주세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나서지만 그가 우선순위로 삼는 봉사활동의 대상은 ‘이주민’이다. 타향살이를 하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라 더욱 마음이 가고, 열심히 살고자하는 그 모습에 힘을 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매주 화·목요일 안양 엠마우스에서 이주민과 한국인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얼마 전 센터에 부임한 사제에게도 매주 금요일 영어를 가르치고, 수녀들을 따라 이주민 가정방문에 나서기도 하고, 쉼터에 머무를 이주민들에게 규칙을 안내하는 일을 맡기도 한다. 당연히 이 모든 일은 그가 스스로 나선 봉사다.
“다문화가정 엄마들이 아이들 영어 가르쳐주고는 싶은데, 현실적으로 배우기 어려워요. 엄마들 그런 마음 제가 잘 알죠. 저도 한국어 처음 배울 때 엄청 힘들었어요. 결혼이민여성들을 보면 처음에 시집와서 전남 무안에서 시부모님하고 살았는데 그때 기억이 진짜 많이 나요.”
양파농사를 하던 시댁에서 그는 일 년 간 시부모를 거들며 농사를 함께 했다. 경운기를 운전하고, 호스를 당겨주기도 하던 일을 회상하며 그는 ‘힘들었지만 참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위의 많은 결혼이민여성들이 아프게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다. 시부모에게 시달리고 남편의 폭력에 눈물지으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왜 결혼했어요? 욕하고 때릴 거면. 필리핀에서 온 언니였는데, 셋째까지 임신해서도 남편한테 맞고 그랬어요. 나중에 남편이 집을 나가라고 그래서 밤 7시에 애들 데리고 언니가 벌벌 떨면서 우리 집으로 왔더라고요.”
가정폭력으로 갈 곳 없는 다문화여성들에게 자신의 집을 선뜻 내어주고 잠깐이지만 돌봐주기 시작했다. 상담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혼하는데 도움을 주고 아이들을 함께 보살펴주기도 했다. 한 번은 가정폭력으로 갓난아이를 데리고 쫓겨난 결혼이민여성을 집에서 보호하고 있다가 모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사주고 배웅하기도 했다.
“돈 생각 안 해요. 꼭 필요한데 썼는데 하느님이 채워주시겠지요. 신랑이 너무 착한 사람이라 다문화여성들이 집에 머물러도 이해해주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고 말도 해줬어요. 신랑은 항상 이렇게 말해요. ‘쥴리타가 하는 일은 좋은 일이야’.”
■ 촛불이 켜지며
그의 봉사 대상은 이주민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역사회 새마을부녀회에 가입해 저소득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을 위해 빨래와 목욕봉사를 하고, 겨울에는 연탄을 나르고 김장을 담그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자식들에게 버림받는 어르신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선뜻 나선 자원봉사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진짜 불쌍해요. 저도 자식 있으니 그 마음 알죠. 저도 늙을 텐데, 이 다음에 저도 이렇게 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제가 가면 외국인이라고 처음에는 놀라시지만 이제는 장난도 치시면서 며느리처럼 아껴주세요.”
요즘에는 적적해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한국 노래도 연습해 봉사 중에 불러드리고 있다. ‘자기야’ ‘사랑을 위하여’ ‘만남’ ‘사랑의 미로’, 어르신들의 애청곡일 만한 노래들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이주민과 어르신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웃과 자주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이루고 싶은 꿈도 생겼다.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복지관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이다.
“제가 배운 가톨릭 신앙은 필리핀에서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신앙이에요. 신앙 안에서 살려고 늘 노력하죠. 하느님은 큰 사랑을 저희에게 주셨잖아요. 그 큰 사랑을 생각하면 봉사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요. 저를 이해해주는 신랑과 아이들에게도 감사해요. 우리 가족이 항상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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