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길을 떠나 외국 생활을 한지도 만 9년, 1969년 2월 박사학위를 마치고 곧 귀국하리라는 꿈에 벅차 있었다. 주교님께 귀국 관련 서신을 드렸더니,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라는 회신이 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주교님께 다시 짐을 싸두고 기다릴지 아닐지를 여쭈었다. 주교님께서는 당신이 유럽에 갈 일이 있으니 그때까지 짐을 싸놓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 후 주교님께서 로마에 오셨다가, 독일로 오셨다. 그리고 내게 두 가지를 부탁하셨다. 한 가지는 교구가 재정적으로 열약하기에, 독일에 좀 더 머물면서 본당들을 찾아가 모금을 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당신께서 주교회의에서 교포사목을 담당하게 됐는데, 당시 부산교구 사제로서 로마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교포사목을 하시던 원필호 신부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으니 독일의 한국 신자들을 위한 사목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본당을 다니면서 모금하는 것은 여행경비도 부족하고, 내 성격에도 맞지 않았기에 주교님께 첫 번째 부탁을 면해달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두 번째는 사제로서 거절할 수 없으니 교포사목은 맡겠다고 말씀드렸다. 주교님께서는 쾌히 승낙하셨다.
주교님께서는 2년간 교포사목을 제안하셨지만, 나는 적어도 5년은 함께해야 사정을 두루 파악하고 계획을 세워 사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교님께 말씀드렸더니 2년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결국 2년간 독일 교포사목을 맡고, 이후 후임 신부를 파견하기로 했다. 당시 한국은 가난했기에 젊은 청년들을 광부로, 여성들을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했다.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 한국인들을 찾아다니면서 혼자서 사목을 하려니 문제도 많고, 먼 거리 여행에서 오는 피로로 건강을 유지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나는 대안을 찾고자 노력했다. 우선 중요한 도시를 거점으로, 그곳에 있는 한국 수녀님이나 레지오마리애 단체, 또는 노동청년단체(JOC)를 통해 전교하고 교리도 가르치도록 하고, 때때로 그들을 방문하면서 사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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