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가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기념해 ‘다산 정약용과 서학 및 천주교와의 관계’를 대주제로 11월 23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은 파편적으로만 알려져 온 정약용의 면모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 자리였다.
유네스코가 국내 인물로는 최초로 2012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한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와의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한국 천주교회 초기 역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면서 천주교 신앙이 조선 후기 사상에 미친 영향을 살피는 데 초점이 맞춰진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 역사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아온 교회의 위상을 돌아보게 한 장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는 기존에 이뤄져온 교회사적 접근의 틀을 뛰어넘어 교회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 등 전통 인문학 분야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해 다산 정약용을 둘러싼 학문의 가능성을 돌아보게 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이날 행사에서 인사말을 통해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 2)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상충할 듯 보이는 다양한 주장들도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교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교회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며 연구자들 사이의 적극적인 소통과 학제간 연구를 당부했다.
기조 강연 / 다산의 사천학(事天學)과 천주교 교리의 활용 - 금장태(서울대학교 명예교수)
20대 청년기에 천주교 신앙의 새로운 세계관에 심취했던 정약용의 의식 속에서 천주교의 여파가 쉽게 지워지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산이 형체가 있는 ‘천’과 주재자로서 ‘상재’의 의미를 확실히 구별해 놓으려 한 의도는 주재자로서 실재 존재가 ‘상재’이지 ‘천’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으며 이 점에서 「천주실의」에서 제시된 마테오 리치의 의도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산은 유교 경전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자신의 경학적 근본 전제를 ‘천-상재’를 섬기는 신앙적 의식으로 정립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하늘을 섬길 것’(實心事天)을 역설하며 사천학(事天學)을 정립했다.
다산은 ‘인’을 ‘남을 향한 사랑’이라 해석하면서 그 사랑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넘어 이웃과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확장되며, 치자(牧)의 백성에 대한 사랑이 강조된다. 특히 백성을 다스리는 자의 신앙적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다산은 천주교 교리의 영향을 받아 유교경전을 새로운 빛으로 해석함으로써 주자학의 의리론적 경학을 넘어 ‘사천학’으로서 새로운 경학체계를 제시했다. 다산은 유교와 천주교의 두 축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사상적 물결이 충돌하는 역사적 시점을 살면서 그 합류의 가능성을 찾아 더욱 큰 사상사의 물줄기를 열어 주었다.
제1주제 / 다산 정약용과 서학/천주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다산의 천주교 신앙 문제를 중심으로 - 원재연(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혼자서 한문 서학서를 보면서 가톨릭 교리를 익힌 다산의 가톨릭 교리지식상의 한계점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다산이 당시 가톨릭 교리와는 어긋난 유교식 상제례를 거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가톨릭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산의 내면적인 사상(사고)과 그의 삶(실천)의 문제는 당연히 일치되어야 하고 연구자는 이 관점 하에서 논지를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제2주제 / 다산의 상제관과 서학의 상제관 - 김치완(제주대학교 교수)
다산이 천주교를 신앙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상제(上帝)는 결코 그리스도교의 천주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그의 상제가 존재론적 실재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산의 상제는 서양 근대의 이신론(理神論)과 가까운 존재로 볼 수 있다.
한국교회가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요청에 절절히 응답하려면, 믿음의 성조들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현실과 미래로 초점이 옮겨져야 할 것이다.
제3주제 / 마테오 리치와 다산 정약용 철학의 거리 : 다산의 지적 배경을 통해서 본 「천주실의」의 쟁점들 - 백민정(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다산의 철학체계는 중국 성리학과 양명학, 조선 주자학, 청대 고증학, 일본 고학 등의 학풍이 유기적 양상으로 혼재된 것이다. 「천주실의」 등에 대한 다산의 독해는 오히려 자신의 관점을 투사해 만들어낸 의도적인 오역처럼 보인다.
다산의 철학은 18~19세기 조선에 유입된 새로운 다양한 조류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내적인 자기분열, 즉 유교 지식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전통사상과 외래사유 간의 지적 분열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중요한 사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주제 /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의 심성론 - 정인재(서강대 명예교수)
영혼이라는 말은 마테오 리치가 서양의 아니마(anima)를 처음으로 번역한 이래 예수회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서학의 영혼론은 사유하는 인식의 주체가 마음이 아니라 뇌에 있다는 사실이다.
다산은 서학의 아니마론과 원시유학을 결합하여 자기의 성기호설을 주장했다. 그는 서학의 영향 하에서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양자를 종합하여 동아시아 유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
주자학의 심성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성기호설을 제출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했다.
다산은 중국에서 미처 발전시키지 못한 서학을 조선의 유학과 융합하여 새로운 유학을 창조한 문화적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제5주제 / 천주교의 유교 제례 금령과 다산의 상제례관 - 최기복 신부(한양대학교 석좌교수)
다산과 천주교와의 관계를 조상 제사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제1기 신해교난 이전(1762~1790), 제2기 신해교난에서 신유교난까지(1791~1801), 제3기 유배시기(1801~1818), 제4기 해배(解配) 후 말년(1819~1836) 등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다산은 천주교회의 제사 금령을 단호히 거부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는 충실히 따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제례 문제에서 볼 때 다산은 200년 앞을 내다보고 처신한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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