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용 신부 약력
1970년 사제서품
1970~1975년 반월성본당 주임
1974~1975년 장호원본당 주임 겸임
1975~1978년 고색동본당 주임
1978~1980년 중앙본당(장내동본당) 주임
1980~1983년 교구 사목국장 및 교육국장
1983~1986년 해외교포사목(미국)
1986~1991년 송서본당 주임
1991~1995년 와동일치의모후본당(수암본당) 주임
1996~1999년 교구 사무처장
1997~1999년 교구총대리 겸임
1999~2003년 산본본당 주임
2003~2006년 분당성마르코본당 주임
2006년 10월 31일 수원대리구 대리구장
2012년 11월 29일 퇴임 및 은퇴미사
“세상에 자식들에게 은퇴하겠다고 말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사제는 기능직이 아니라 신자들의 영적인 아버지예요. 수원대리구장이라는 기능직에서 퇴임했을 뿐이지 사제로서 은퇴한 것은 아닙니다. 소위 말하자면 그냥 ‘신부님’이에요.”
11월 29일 대리구 중심성당인 권선동성당에서 퇴임미사를 봉헌한 최재용 신부는 ‘은퇴’라는 단어에 혀를 내둘렀다. 스스로 그냥 ‘신부님’이라고 이야기하는 최 신부의 수줍은 미소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최 신부는 지난 7년간 이 따뜻함으로 대리구를 돌봤다.
2006년 10월 최 신부가 수원대리구장에 취임하자 화서동 주변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옛날 교구청에 청소 노인네가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옛날 교구청’, 즉 수원대리구청과 그 인근이 하나하나 정리되고 깨끗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는 사이 고양이 천지에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던 수원대리구청이 훤해졌다. 소문의 ‘청소 노인네’ 정체가 바로 최 신부였다. 신자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사목을 실천해온 최 신부가 수원대리구장으로서 처음 한 일이 청소였던 것이다. 대리구에 가장 높은 책임을 진 사람이 가장 낮은 일에서 그 업무를 시작했다.
“사제에게 권위도 필요하지만 저는 가벼움을 택하고 있어요. 우리 수원대리구가 따뜻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신자들이 편하게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대리구청에 처음 와서 청소를 시작했는데 ‘청소 노인네’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게 듣기 좋아서 끊임없이 청소했지요.”
그렇게 몇 개월을 대리구장이 손수 청소하자 인근의 신자들도 빗자루를 들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신자들이 스스로 나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원대리구청 인근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의 발길이 끊겼다. 가지런히 모아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성당은 만만한 곳이어야 하고 교회는 신자들이 다가서기 편해야 해요. 우리 교구는 급성장했지만 그러다 보니 아직 성숙하지를 못했어요. 교회 공동체는 조직이 아니라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지요. 각박한 사회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 때 신앙의식이나 신자로서의 소속감이 커져요. 성숙함이란 바로 따뜻한 마음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9개 본당 주임을 비롯해 교구 사목국장, 교육국장, 사무처장, 교구총대리 등을 역임해온 최 신부는 교구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급성장한 교구가 성숙하기 위해 최 신부가 내놓은 해법은 바로 소공동체다. 최 신부는 “소공동체가 활발하게 될 수 있도록 보완되면 냉담교우의 반 가까이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제들이 신자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 신부가 지금까지 펼쳐온 사목의 모습이다. 최 신부의 따뜻한 사목은 42년 동안 줄곧 이어졌다. 미사 집전 여부에 관계없이 미사가 끝나면 반드시 신자들을 배웅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세례명을 외우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왔다. 암으로 투병하며 고생했지만 그 고생이 오히려 최 신부의 따뜻한 사목에 깊이를 더했다.
“교회 공동체가 활성화되려면 자주 보고 싶고,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어져야 해요. 그러려면 우리 신부들이 신자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죠. 위암으로 고생하고 나니 아픈 사람들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돼 결국 따뜻함으로 귀결되더군요. 모든 신부님들이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최 신부가 말하는 바람직한 사제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성당에 찾아오는 신자들을 다 만나야 할 뿐 아니라 본당 내 환자나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찾아다녀야 한다. 잘못한 사람을 야단치기보다 이해해야 하고 신자들을 육성하고 그들의 쉼터가 돼줘야 한다. 모든 신자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아버지가 바로 사제라 했다. 그래서 최 신부는 “사제의 길은 고달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최 신부에게 사제의 길은 매 순간순간이 수행(修行)의 순간이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제는 수행하는 사람이에요. 우리의 수행으로 공로를 쌓는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신부님뿐이 아니에요.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덕을 닦는 일, 즉 수덕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묵주기도와 성무일도를 열심히 바쳐왔고 앞으로 더 열심히 바칠 겁니다.”
이제 따뜻함의 사목으로 수원대리구를 사목해오던 최 신부는 원로사목자로서 새로운 수행의 길에 나선다. 최 신부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수원 당수동에 거처를 잡고 살림을 마련하는 최 신부는 “생전 처음 내 살림을 하려다 보니 준비가 만만치 않다”면서 “장가가고 시집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며 웃었다.
“공직에서 떠나면 현직에서 뛰는 신부님들의 뒷바라지를 해야지요. 지역 노인들과 함께 마을을 살기 좋게 만드는 일도 하고 싶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바쁜 일정으로 잘 가지 못했던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외국의 성지를 순례하고 싶어요.”
교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놓는 사제의 삶을 산 최 신부지만 그의 사제생활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대리구장에서는 퇴임하지만 사제의 삶을 떠나는 최 신부에게 ‘은퇴’란 말은 없다. 그래서 최 신부는 이별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동안 수원대리구에서 함께한 모든 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저는 그만한 자질이 없고 주교님 말씀에 순명했을 따름인데 교구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그동안 대리구에서 함께해주신 여러 단체의 신자분들, 대리구 활성화를 위해 애써주신 대리구 소속 신부님들께 가슴 깊이 고마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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