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생활을 하다보면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다. 뿌듯할 때나 괴로울 때도 있다. 독일 한국 신자들을 찾아 고해성사와 혼인성사, 때로는 장례미사를 주례해오던 어느날, 윤공희 대주교님이 독일에 오셨기에 주교님을 모시고 한 달 동안 독일 이곳저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때마침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까니시아눔에서 공부하던 교구 박경식(루카) 신학생이 1969년 그의 은인 본당인 독일 다이데스하임의 스파이어 교구 주교님께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일정 중 박 신부님도 며칠간 우리와 동행해 은인 본당과 여러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박 신부의 은인인 마르틴 니더(Martin Nieder) 본당 신부 또한 주교님의 여행 계획을 알아보고 주교님이 미국으로 떠나실 때 자신도 쾰른 비행장에 환송을 나왔다. 일행은 시내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사목을 하러 브페탈로 떠나고 박 신부와 본당 신부는 승용차로 자신들의 본당으로 갔다. 브페탈에 도착해서 숙소 수녀님께 피곤하니 아침에 잠을 깨우지 말라고 부탁하고 곤히 잠들었다.
그런데 새벽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며 나를 깨웠다. 마인쯔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는 것. 적십자 병원 수간호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한참 머뭇거렸다. 예감이 이상해서 신부님들이 타고 간 차가 사고 났는지 물었다. 간호사는 “어제 이곳에 왔던 박 신부…” 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곧 죽었느냐고 물었다. 죽지 않았으면 오후에 신자들을 방문하여 성사를 주고 미사를 주례해야 하니 그 후에 갈 것이고, 죽었다면 곧 가야하니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다.
박 신부는 즉사했고, 본당 신부는 다리가 부러지고 심하게 다쳤다는 답이 왔다.
신자 방문을 취소하고 곧바로 기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2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해 당직 의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시신을 확인한 후 병실에 있는 본당 신부를 문병했다. 그리고 본당으로 가서 미국에 계신 주교님과 전화로 상의하고 박 신부의 시신을 장례미사 후 이국땅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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