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이기에 그 사랑이 더 커지는 곳이 있다. 한겨울 영하의 기온처럼 차가운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과 희망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곳, ‘한사랑 가족 공동체’(대표 윤석찬 신부)다.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커다란 별이 1년 내내 공동체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40)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가 바로 이곳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 아버지 신부와 사랑방 식구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정문 옆 샛길은 기자의 발걸음을 도심 속의 외딴섬 쪽방촌으로 안내했다. 자그마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안 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활짝 열린 문과 그 틈으로 들려오는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이목을 사로잡았다. 궁금증이 일어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주방에서는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느 가정집의 식사시간과 다르지 않은 이곳이 중림동 쪽방촌의 사랑방 ‘한사랑 가족 공동체’다.
쪽방촌 사랑방답게 한사랑 가족 공동체에는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특히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이자 아버지인 윤석찬 신부(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있는 사무실에는 노크와 신부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공동체 귀염둥이 막내 박현우(가명·16)군이 애타게 윤 신부를 찾는다. 한창 노는 것이 좋을 나이의 박군이 게임하는 것을 허락받으려고 했지만, 엄격한 아버지 윤 신부에게는 여간 어렵지가 않다. 결국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뾰로통한 것도 잠시, 이내 어른들과 섞여 즐겁게 점심식사를 하는 박군의 모습은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평범한 10대 그 자체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점심시간이 끝나자 공동체 식구들은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무명의 노숙인이 아닌 사회인으로 다시 우뚝 서기 위한 힘찬 땀방울을 흘리기 위해서다. 한사랑 가족 공동체는 흔히 알고 있는 노숙인 급식소가 아니다. 아직은 낯선 개념이지만 쪽방촌 공동체다.
공동체는 2007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로부터 안식년을 얻은 윤 신부가 우연치 않게 이곳 중림동 쪽방촌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안식년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갈 곳이 없어져 쪽방촌을 찾았는데 아마 하느님께서 이곳으로 밀어내신 것같다”고 말하는 윤 신부는 이미 일본 오사카 이쿠노본당에서 사목을 하며 노숙인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던 터라 지금의 사도직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게다가 2003년부터 서울 용산본당 빈첸시오회원들이 운영하던 쪽방촌 흔적이 남아 있어 한사랑 가족 공동체의 기반이 됐다.
윤 신부는 이곳에 생활하면서 공동체 식구들에게 ‘사랑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조금씩 방을 얻으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대부분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식구들에게 말 그대로 사랑방이자 비빌 언덕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사랑방에서는 매일 식구들을 위한 아침, 점심, 저녁식사가 마련된다. 반찬은 윤 신부가 소속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재속회 서울지구 회원들이 손수 만든 가정식이다. 얼마 전까지는 기업체 사내식당에서 푸드뱅크를 했지만 위탁업체들이 들어오면서 반찬 지원이 끊겼다. 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그들 가까이에 있었다. 마침 봉사할 곳을 물색하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재속회 서울지구 회원들이 찾아왔던 것. 이들은 이틀에 한 번씩 정성이 담긴 반찬을 공동체에 제공하고 있다. 고기반찬에 유기농 채소까지, 엄마의 사랑이 양념된 반찬은 공동체 최고의 자랑거리다.
▲ 한사랑 가족 공동체를 통해서 사랑과 희망을 느끼는 공동체 식구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식사시간 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다.
▲ 애정을 듬뿍 담아 프란치스코회 재속회 서울지구 회원들이 만들어 제공하고 있는 반찬은 매 식사를 풍성하게 한다.
■ 따로 또 같이 만드는 가족 공동체
한사랑 가족 공동체에는 현재 100여 명의 식구들이 생활하고 있다. 사랑방을 중심으로 인근 쪽방에서 거주하는 식구들이 100명, 후암동 3층 주택을 개조한 집에서 거주하는 식구 등 몇 년 사이 수가 확 불어났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면서도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 공동체 활동은 단순히 방과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동체의 문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항상 열려 있지만 조건이 있다. ‘자립’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 공동체는 방세와 용돈은 두 달간만 제공하는 대신 건강한 식구들은 일자리를 찾도록 독려하고, 아픈 식구들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잃어버린 신분도 찾아준다. 덕분에 호적도 없던 이 요셉(34)씨는 유령인간으로 살아온 지 30여 년 만에 주민등록증, 여권, 장애인증 등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공동체에는 또 하나의 규칙이 있다. 월급 혹은 기초수급으로 받은 돈을 각자의 통장에 저금하도록 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적금해서 1000만 원 이상 모은 식구도 있다.
윤 신부는 “우리 식구 중에는 혼자 살아온 사람들이 많아서 목적의식도 없고 돈을 모아야 할 이유를 못 찾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돈을 조금씩 모으면서 마음의 안정도 찾고 자존감도 찾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전했다.
사회인으로서 자존감을 찾은 식구들은 신앙에도 열심이다. 매주 30~40명이 사랑방에 모여 미사를 봉헌한다. 성탄전야 미사 때는 매번 성극을 준비해 직접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어설픈 연기와 애드리브 일색이지만 전문 공연보다도 더 뜻 깊고 큰 감동을 준다.
공동체에서 생활한 지 5년째 되는 이 요셉씨에게 ‘한사랑 가족 공동체’의 의미를 물었다.
“저에게는 이곳이 사랑 그 자체예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저녁때가 됐다. 염치없이 한사랑 가족 공동체에서 두 끼의 식사를 얻어먹는 기자 앞에 한 식구가 아무 말 없이 초코쿠키와 일회용 손난로를 하나 놓았다. 그는 인심 좋게 다른 식구들에게도 라면을 나눠주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는 이들에게 ‘한사랑 가족 공동체’는 그 자체가 주님의 선물이다.
▲ 성탄이 다가오면 매년 손수 만든 구유를 봉헌하는 최 미카엘(49)씨. 올해는 한사랑 가족 공동체의 사랑방을 모티브로 구유를 제작하고 있다.
▲ ‘신앙’은 한사랑 가족 공동체 식구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보여줬다. 성경필사를 두 번이나 했을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유 시몬씨는 “하느님의 업적을 듣고, 읽고, 쓰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사진은 유 시몬씨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