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한국교회가 걸어온 2012년을 돌아보게 하는 열쇳말은 ‘공동선’과 ‘사회교리’다. ‘믿을 교리’와 함께 ‘지킬 교리’의 중요한 기둥을 이루는 사회교리는 한국교회 안팎에서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시대적 어려움 안에서 한국교회는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 실현, 생태계 보전 등의 활동에 힘을 기울이며 진리의 등불을 밝히는데 앞장서왔다. 아울러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전파하는 기지국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한국교회는 올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막이 오른 ‘신앙의 해’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며 교회의 사명을 환기하고 실천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님의 길을 넓히기 위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소명을 실천해온 한국교회의 여정을 돌아봄으로써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에 다가서기 위한 희망을 꿈꿔본다.
■ 세상 속에 선 교회 -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하나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장면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같이 아파하며 고통마저 나눈다는 의미다.
2012년 한 해, 한국교회가 세상 속에서 짊어지고 온 십자가에는 ‘스카이(SKY)’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쌍용자동차(S) 사태를 비롯해 강정 제주해군기지(K), 용산참사(Y) 문제를 뜻하는 ‘스카이’ 현장에는 늘 교회가 있었다. 특히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현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주는 우리 시대의 광야가 됐다.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와 국가공권력 회개를 위한 시국미사’를 필두로 ▲강정마을 생명평화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제주국제평화회의’(2월 24~26일) 등 각종 회의 및 대회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의 ‘제주 해군기지 반대’ 지지 등 국제사회의 지원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 등을 요구하는 ‘2012 생명평화대행진 출정식’ 등 제주 해군기지를 통해 드러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 23)는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아로새겨졌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세상의 시기와 질투는 급기야 지난 8월 강정마을에서 생명평화 미사가 봉헌되는 도중 공권력에 의해 성체가 짓밟히는 초유의 사태를 낳기도 했다.
무려 23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강제진압의 상처와 생활고 등으로 삶을 접은 쌍용자동차 사태와 마주한 교회는 아파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기도와 실천으로 쌍용자동차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가 하면, 이들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서 지난 10월 10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생활지원을 위한 ‘희망바구니’ 모금액 전달식을 열어 서울·광주·대구·부산·수원·인천교구 등 6개 교구가 모은 8605만9115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수원교구는 장학기금 6923만7180원을 조성해 별도로 전달하기도 했다.
■ 주님은 생명이시다 - 생명·환경을 지키는 교회
2012년을 돌아보게 하는 또 하나의 열쇳말은 ‘탈핵’이다. 지난해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을 덮친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발전의 위험성을 새롭게 자각한 교회는 국내외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연과 사진전 등을 열어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대안에너지를 모색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런 노력으로 올 1월 ‘동해안 탈핵 천주교 연대’가 출범하고 각종 세미나, 특강 등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교구는 물론 본당이나 기관·단체 단위로까지 탈핵을 주제로 한 학술행사와 순례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확산돼 핵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새롭게 바꿔놓는데 기여했다.
4대강 개발사업 반대로 대변되는 교회의 생태계 보전 노력은 올해도 꾸준히 이어졌다. 4대강을 되찾기 위한 생명평화 기도회·생명평화미사가 전국 곳곳에서 봉헌되며 생명의 고귀함과 환경 보전의 필요성 등을 확산시키는데 이바지했다. 특히 지난 2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등이 참여해 출범한 4대강 조사위원회의 활동은 4대강 복원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지난 8월 오랫동안 생명과 생태계 보전을 위한 싸움의 최전선이었던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 문제의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생명의 청지기로서 교회의 발걸음은 잠시도 멈칫대지 않았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응급(사후)피임약 사용이 크게 늘며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자 교회는 응급피임약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성 의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6월에는 프로라이프 연합회를 비롯한 각계 생명 수호 관련 기관·단체 회원들이 함께한 가운데 서울광장 등지에서 한목소리로 인간 생명 수호를 외치는 ‘생명 대행진(March for Life) 2012’를 펼치기도 했다. 또한 전국 각 교구 생명위원회 및 관련 기관단체가 연대, 발족한 ‘천주교 생명운동연합회’가 지난 7월 5일 충북 청원군 식품의약품안전청 앞에서 응급피임약 재분류 반대 결의대회를 열고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확산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 같은 노력으로 응급피임약이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야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유지될 수 있게 됐다.
사형제만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오해와 논란을 낳고 있는 제도도 드물 듯하다. 그만큼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교회의 활동은 가시밭길이다. 어린이 성폭행 사건, ‘묻지마 살인’ 등 흉악 범죄로 그 어느 때보다 들끓었던 올 한 해, 양심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버린 생명의 배를 다시 띄운 건 오로지 교회의 공이었다. 흉악 범죄로 인해 사형제도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를 중심으로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서울에서 5차례에 걸쳐 열려 우리 사회에 신선한 생명의 울림을 전해준 생명 이야기콘서트를 수원, 대구 등 지방으로까지 확대해 생명 담론의 확장을 도모하는가 하면, 세계사형폐지의 날(10월 10일)을 기념해 열린 사형폐지를 위한 세미나, 세계 사형반대의 날을 기념해 11월 3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생명의 도시(Cities for Life)’ 행사 등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생명의 영토를 넓혀나가는데 공을 들였다.
■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교회 - 화해·일치시키는 교회, 사회교리 확산의 디딤돌 다져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민족화해의 여정은 더디지만 하나됨을 향한 물꼬는 막히지 않고 이어갔다. 의정부교구는 올 1월 1일부터 전 교구민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이어온 ‘묵주기도 7500만 단’을 봉헌해 민족화해의 불씨를 살려갔다. 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북한 지역 복음화를 위한 준비와 새터민 정착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제공할 ‘민족화해위원회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지난 7월 첫 삽을 떴다. 한국교회 최초로 북한 관련 연구 기능을 갖춘 ‘민족화해위원회센터’ 설립이 가시화됨에 따라 교회의 통일사목도 새로운 궤도를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각 교구들은 새터민과 마음의 벽을 허물어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어 세상이 던져주는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화해를 위한 밑거름을 다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회가 앞장서 비가톨릭 그리스도교나 이웃종교와 함께 걷는 모습도 종교는 물론 사회의 화합과 일치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0월 20일 경기도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1000명이 넘는 종교인이 함께한 가운데 열린 ‘2012 이웃종교 화합주간’ 전국종교인화합대회는 올 한 해 교회가 거둔 만남과 소통의 결실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 행사였다. 이에 앞서 교회는 ▲학교폭력에 대한 입장 ▲탈핵 세미나 ▲국회의원 총선거 관련 좌담 ▲쌍용차 사태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웃 종교인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해 화합의 다리를 놓는데 앞장섰다.
올 한 해 한국교회가 거둔 열매 가운데 또 하나로 ‘사회교리’의 확산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지내는 ‘사회교리 주간’이 제정된 것을 계기로 올해 들어서는 교구 및 본당, 기관단체 차원으로 폭넓게 사회교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서울대교구가 지난 1995년 가장 먼저 사회교리학교를 개설한 이래 수원교구(1997년), 청주교구(2001년), 인천교구(2006년), 대전·전주교구(2009년), 제주·의정부교구(2011년)에 이어 올해 들어 대구대교구와 부산교구가 사회교리학교를 마련함으로써 사회교리의 지평을 한층 넓히며 그리스도의 길을 다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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