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위한 ‘배려’와 함께하는 ‘나눔’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전통의 다례(茶禮)문화는 주변의 가족, 이웃, 동료들과 어울려 기쁨을 누리는 성탄의 시기와 잘 어울린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차를 우려내는 준비과정을 거쳐,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찻자리 예절이 마음을 다해 성탄을 기다리고, 가까운 이들과 다같이 모여 그 기쁨을 되새기는 성탄 축제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가톨릭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가톨릭다례문화원(원장 정금화) ‘입문과정(준사범반) 1기 수료식과 다례 시연’ 현장에도 차 향기와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찻자리’가 펼쳐졌다.
■ 차 향기에 성탄의 기쁨을 싣다
‘크리스마스 찻자리’는 대개 좌식 중심으로 알려져 있는 전통 다례문화를 현대생활에 맞게 입식에 대입, 테이블에서 손님을 맞는다.
“여느 모임자리든 커피나 술이 빠지지 않지만, 이는 심신을 쉽게 흥분시키기 때문에 신앙과 기도를 목적에 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 가톨릭다례문화원 정금화(젤마나) 원장은 “차를 마시며 마음을 정돈하고 조용히 묵상을 올리는 다례문화가 신앙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흰 테이블보가 덮인 테이블 중앙에 성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빨간색 테이블 러너(table runner)를 두르고, 성가정상과 촛대 및 빨간색 초, 꽃(포인세티아 등) 등을 배열한다. 또 다기는 테이블 러너와 조화를 이루는 붉은 빛의 진사나를 택한다.
테이블 위에 인원 수만큼 식탁 매트(나무 소재 등)를 깔고 그 위에 각각 빨간색과 초록색 천을 올려 성탄 분위기를 돋우는 한편, 찻잔과 다식을 올린다. 의자 또한 빨간색과 초록색 천으로 덮개를 씌운다.
상차림을 마친 집 주인은 미리 물을 끓이고, 초에 불을 붙여두고 찾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들인다. 집 주인과 손님은 서로 배례(拜禮)를 하고, 손님은 작은 선물로 초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찻자리에 모인 이들은 자리에 앉기 전, 먼저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된 차와 다식을 우리 곁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께 봉헌한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다시 한 번 호흡을 하고, 시작기도를 올린다. 그 다음 차를 우리는 시간은 조용히 묵상을 하는 때이다. 차는 발효차로 준비한다.
차가 알맞게 우려지면 차를 찻잔에 따르고 집 주인은 자신과 가까운 쪽부터 차례로 찻잔을 나눠준다. 차는 천천히 나눠 마신다.
잠시 묵상 후에는 다 같이 성가를 부른다. 아기 예수님을 맞는 기쁨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집 주인은 다시금 차를 우려내고, 우려낸 차가 담긴 다관을 자신과 가까운 쪽부터 손잡이를 잡기 편한 방향으로 넘겨준다. 각자 찻잔을 채우고 나면 차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다담(茶談)을 나눈다. 아울러 모임의 끝에는 마침기도를 잊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찻자리’를 선보인 다선(茶善)조의 일원인 수강생 어희숙(세실리아)씨는 “아기 예수님을 맞아 차와 함께함으로써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더 많은 묵상과 기도의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 신앙생활에 녹아든 차 향기
지난해 시작한 가톨릭다례문화원은 올해 3월 홀로 하는 묵상부터 함께하는 소공동체 기도 모임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신앙인의 신앙생활 전반에 다례문화를 접목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따로 또 같이 이루는 신앙생활에 차 향기가 녹아들어 마음을 다스리고, 기도로 내실을 다지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
‘크리스마스 찻자리’와 같이 당일 가톨릭다례문화원이 마련한 ‘입문과정 1기 수료식과 다례 시연’ 현장을 바탕으로 ‘가톨릭다례문화원이 제시하는 신앙생활에 더해진 다례문화를 소개한다.
▲ 찻자리 풍류
자연에서 마시는 차의 맛은 자연의 맛을 더해 더욱 풍성하다. 찻자리 풍류는 여럿이 모여 자연과 어우러져 즐기는 찻자리의 멋이다. 이웃들과 자연을 찾아 주님의 피조물을 만끽하고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에 차의 향기가 스며든다.
야외에서 하는 찻자리에는 소품을 간소화하고, 차 바구니와 대나무 차호(차를 담는 함) 및 차, 각자의 다기세트, 보온병 등을 준비한다.
찻자리의 시작은 함께 간 이들과 배례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닦는다.
성호경으로 시작해 짧은 기도를 올린 후, 한편에서는 차를 우려내고, 다른 편에서는 붓글씨를 써본다.
차를 우려내는 과정과 붓글씨가 멈추면 찻자리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신 후에는 잠시 담소를 나누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다.
이야기를 끝맺은 후에는 마침기도와 성호경으로 자리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 후 자리를 떠난다.
▲ 차와 묵상
차를 통한 묵상은 침묵 속에서 자신 안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그 말씀에 귀 기울여 참된 주님의 자녀로 살기를 청하는 혼자 하는 찻자리다.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묵상의 찻자리 소품은 십자고상, 초, 꽃과 화병 등을 비롯해 작은 상, 봉헌(헌다(獻茶))을 위한 찻잔과 다식 접시, 다관(차를 우려내는 주전자)과 찻잔 등의 다기세트로 구성한다.
먼저 앞에 놓인 촛불에 불을 밝히고, 차와 다식을 올리며 주님께 큰절을 한 후 자리에 앉아 가만히 숨을 고르며 마음을 정갈하게 비워낸다.
성호경을 긋고 주님의 방식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이끌어 주심을 바라는 묵상을 시작한다.
잠시 동안의 묵상이 끝나면 찻잔을 데워 차를 담아낼 준비를 한다. 찻잔을 데우는 예온(豫溫)의 과정은 마음을 씻어내고, 다시 따뜻한 사랑이 채워지도록 기다리는 시간이다.
또한 비워낸 마음으로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차 우리기는 내 안에 계신 주님을 향해 가는 순간을 의미한다.
차 우리기가 끝나면 함께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고, 내 안의 주님과 함께 차를 마신다. 이어진 묵상을 통해 주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위주에 두는 삶이 아닌 주님을 중심에 두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마음을 비워내는 묵상의 찻자리는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역할로도 기대를 모은다. 시연을 지켜본 전은주(루시아)씨는 “차를 통해 묵상하고 마음을 다독이면서 마음의 치유까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성호경으로 시작한 기도는 다시 성호경으로 마무리하고, 깊은 목례로 예를 다한다.
▲ 소공동체 모임 찻자리
소공동체 모임 자리에 이웃 신자들과 모여 차를 통해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고, 비워진 마음 안에 주님을 모셔 주님의 말씀을 담아가는 찻자리다.
이 찻자리에는 성경, 성가정상, 십자고상, 초, 꽃과 화병 등과 함께 참석 인원에 맞는 작은 개인상과 다기세트, 주님께 차와 다식을 올리는 찻잔과 다식 접시 등이 필요하다.
찻자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음악을 틀고, 촛불을 밝힌다. 찾아온 손님을 맞으며 이들과 함께 십자고상과 성가정상 앞에 차와 다식을 봉헌한다.
서로 평절(배례)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자리에 앉아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을 가벼이 만든다.
이어 성호경으로 자리를 열며 주님을 초대하는 기도를 올린다. 복음을 읽고 나면 고요히 묵상에 빠져 든다.
차를 마시는 순간은 내 안의 주님께 차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때이다. 차의 온기를 마음속에 담고, 당일 복음말씀과 어울리는 묵상글을 읽으며 주님과의 대화를 되뇌어 본다.
참석자들과 정답게 담소를 나누며 친목을 다지는 것도 소공동체 모임 찻자리의 즐거움이다.
마침기도와 성호경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를 한 후, 손님들을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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