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우리는 구유에 모셔진 예수를 만난다.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오신 곳은 거룩한 성전도 아니고 웅장한 궁전도 아니었다. 바로 짐승들의 여물통, 구유였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시작하셨고 성탄마다 우리는 그것을 기리고 있다.
이 시대에도 그분을 본받아 낮은 곳에서 성탄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다.
가톨릭신문은 성탄을 맞아, 감옥에 갇힌 이들과 함께 성탄을 맞이하는 교정사목 봉사자 김주심(마르타·54·와동일치의모후본당)씨를 동행, 취재했다.
■ 쇠창살 안으로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얼어붙은 눈길에 비까지 가세해 미끄럽고 위험한 길이지만 김주심씨의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거리에는 성탄 분위기가 물씬 난다. 화려한 전등 장식과 캐럴이 가득한 거리, 김씨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교도소로 향했다. 한 손에는 예비신자 교리를 받는 재소자들에게 전할 물건들이 한 꾸러미다.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도소를 찾아갔다.
철컹. 쇠창살로 된 문이 잠기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가라앉는다. 어스름한 복도를 지나 쇠창살을 3번 빠져나가자 위화감마저 느껴진다. 저 철문 너머에는 성탄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이곳에선 성탄 분위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벽과 쇠창살, 푸른 옷의 재소자와 검은 옷의 교도관. 범죄자들을 가두는 교도소. 이곳은 그 누구도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다.
김씨가 안양교도소에서 봉사를 시작한 것은 10년 전. 7년 전부터는 재소자들을 위한 예비신자 교리를 해오고 있다. 군대 교리 봉사, 호스피스 봉사, 꾸르실료 봉사, 본당 사회복지분과장, 선교분과장 등 다양한 봉사를 적극적으로 맡아온 김씨지만 교도소 교리 봉사만큼은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재소자라는 낯선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김씨의 두려움은 교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사라졌다. 김씨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자 재소자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순수하기까지 했다. 철문 안과 밖을 나누는 것은 쇠창살이 아닌 ‘편견’이었다.
■ 쇠창살 안에서 만난 예수님
교리가 시작되자 웅성이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교리실을 가득 채운 재소자들이 김씨가 교리를 설명하자 착실한 학생으로 변했다. 이 교실에서 가장 작고 왜소한 김씨의 교리를, 덩치가 산 만한 재소자들이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1시간이 넘는 교리시간 동안 딴청을 피우거나 자는 사람도 없다. 어떤 재소자들은 김씨의 교리를 공책에 받아 적기도 했다.
안양교도소 재소자들 사이에서 김씨의 교리는 인기가 좋다. 교리실은 늘 가득 차고 정원을 훌쩍 넘겨 대기인원까지 있을 정도다. 게다가 천주교 담당 교도관도 예비신자로서 교리를 듣는다.
그러다 보니 2010년, 2012년 두 번에 걸쳐 안양교도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재소자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편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김씨였다.
2년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김씨는 아들 만이 아니라 신앙마저 잃을 위기에 있었다. 밀려오는 슬픔에 하느님이 어디 계신지, 계시기는 한 건지 의심하게 됐고 본당에 나가기도 꺼려졌다. 죄가 되지 않는다면 죽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교리 날이 돌아왔다. 교도소에 간 김씨는 재소자들에게 작은 쪽지 한 장을 받았다. 그 종이에는 재소자들이 한 달 가까이 기도해 온 횟수가 적혀 있었다. 어떻게 소식을 들어 알았는지 재소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세상을 떠난 김씨의 아들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김씨는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던 하느님을 교도소에서 만났다. 그 후로도 슬프고 괴로운 때가 찾아왔지만 김씨는 교도소에서 교리를 할 때마다 힘을 얻었다. 남들이 죄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이 김씨에겐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과 같았다. 그래서 교도소를 찾는 길에 늘 묵주를 들고 기도했다.
■ 쇠창살 안의 성탄
“세례를 받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죠?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돼요.”
체험을 바탕으로 교리를 설명하는 김씨는 ‘용서’를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용서하심을 강조하고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김씨의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은 재소자들이 다시 이 안양교도소에 들어온 일은 아직 없다. 출소 후에 김씨의 본당으로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여럿이다. 그중에는 꾸준히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있다.
이번 성탄에도 세례식이 있다. 성탄을 앞둔 이날 교리의 마지막에 김씨는 성체 대신 초코파이를 나눠주며 영성체 연습을 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초코파이를 받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연습을 하는 예비신자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진지했다. 이번 성탄에는 6명이 세례를 받는다. 교리를 받다 출소한 사람들이나 다른 교도소로 이전한 사람들이 빠지고도 6명이다.
이렇게 김씨의 교리로 해마다 30여 명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다. 교리가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강도가 높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빠짐없이 교리를 나와야하고 신약성경 전체를 필사해야 한다. 그런데 교리를 받는 모든 재소자들이 신약성경을 필사하고 심지어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필사한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보는 재소자들이 하느님을 갈망하는 데 더 열심이다.
나이도 덩치도 생김새도 다 달랐지만 이 사람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파란 옷을 입었다는 점, 그리고 모두 세례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거룩한 아들로 태어난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장 작은 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세례성사를 통해 거룩하게 태어난다. 교도소의 성탄에는 트리도 구유장식도 전등 장식도 없다. 그러나 김씨는 알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나는 교도소의 성탄이 얼마나 기쁨으로 가득한 지. 김씨는 올 성탄에도 예수님을 만난다.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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