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 교회는 성가정 축일을 지냅니다. 새해를 선물 받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특히 ‘가족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 마음을 정돈하라는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오늘 복음 말씀이 참 좋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어릴 적에는 부모님 속을 썩이면서 ‘똑 부러진’ 말대답도 하는 평범한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듭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엄마 아빠의 사랑이 필요한 아기였으며 엄마 아빠의 도움으로 자라나는 어린이였으며 때론 부모님 애간장을 녹이는 아들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딱딱’ 마음이 통할 것만 같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어 쭐레쭐레 어깨동무를 하고 신 나게 세상을 내달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친구’이니까 “힘내시고! 예수님”이라며 ‘툭툭’ 그분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기분을 이렇게 들뜨게 하는 오늘 복음 구절이 두 분, 성모님과 요셉 성인께는 가장 갑갑하고 답답하고 지난했던 어둠이 아니었을까 짐작이 됩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무언가 틀린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을 갖게 하는 빌미였을 것이라 싶어집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전혀 특출하지도 범상치도 않은 평범한 소년 예수를 키우는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천지도 모르는 젖먹이로 천진난만한 개구쟁이로 자라는 아이, 원대한 꿈도 남다른 포부도 갖지 않은 소년을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지내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시험이었으리라 싶은 겁니다. 때마다 불쑥 나타나서 행동지침을 알려주던 천사도 감감무소식인 채 세월은 가고…. 시골구석에서 아버지 목수 일이나 거들면서 만족해하는 소인배와 같은 모습에 실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하느님의 아들”을 몰라보고 함부로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무엄함’은 또 얼마나 속을 내려앉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놓고 예수의 신원을 속속들이 털어놓을 수 없는 답답함을 생각해 보면 하루에도 골백번씩 마음이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렸을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이리저리 살펴도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아들 예수로 인해서 겪은 생고생들은 너무 많고 크고 버거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온 세상에 기림 받는 성가정이랍니다. 도대체 그 굴곡진 일생을 우직이 견뎌낸 힘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아기로 태어나 자라시며 진심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성가정의 모범 답안을 마련해 주려 하신 것이 아닐까요? 더러 이해되지 않더라도, 더러 성에 차지 않더라도 ‘가족’은 서로 믿고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일깨워 주신 것이 아닐까요? 성가정의 어르신들이 매 순간순간 ‘믿어지지 않는’ 의혹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낱낱이 주님께 봉헌함으로써 가능했을 것이라 감히 어림해 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몰라보는 세상이 야속할 때에 서둘러 그분 사랑을 기억하며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주님께 의탁했을 것이라 싶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딱한 처지를 가엾이 여겨주실 것을 청했을 것이라 싶습니다. 알 수 없는 그분의 뜻, 무엇으로도 잴 수 없는 그분 사랑의 월등함을 믿었기에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었으리라 헤아립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도무지 잘난 것 없고 대단치 않은 우리를 당신 자녀로 선택하셨습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뽑아 주셨습니다. 그분께 “사랑받는 사람답게” 세상의 모든 일들을 참아 주고 용서해 줄 힘을 주셨습니다. 세상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당신의 평화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모두 은총입니다. 전부 공짜입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두루두루 그분의 축복을 선심 쓰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해 주고 용서해 주면서 가진 것을 모두 퍼주고도 행복합니다. 내처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에게마저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는 상대를 위해서도 ‘축복해 주소서’라고 청하게 됩니다. 비로소 성가정의 일원으로 거듭나 세상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새해에는 예쁜 이 미운 이를 가리지 않고, 밉상 곱상을 따지지 않는, 내 편 네 편을 가르지 않는 넉넉한 사랑으로 “주님께서 온통 사랑하시는 모두를 축복해 주소서”라고 기도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저한테 복을 주세요.” “제가 잘되게 해 주세요”라는 응석받이 기도가 사라지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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