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방아리, 이곳에 사는 박금순(이레나·90·수원교구 송전본당) 할머니의 손은 나무껍질 같았다. 할머니의 손이 이러한 것은 온수를 쓸 수 없는 화장실과 부엌, 냉골인 방바닥 때문이다. 할머니는 ‘연탄을 아끼느라 방을 데울 수 없다’고 했다. 방에는 지저분한 홑이불 한 채가 놓여있다. 이날 밖의 온도계는 영하 10℃를 가리켰다.
할머니의 거동은 매우 불편해보였다. 허리를 굽히거나 펴지 못 했으며, 엎드리거나 눕지도 못할만큼 통증에 시달렸다. 할머니의 한 달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9만 원. 연락은 제대로 닿지 않지만 자식들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에서마저 탈락했다.
“외롭지. 많이 외롭지. 너무 외로우면 간신히 일어나서 밖에 우두커니 있다가 들어와요. 기도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다 잊어버렸어. 성모님 보면서 기도하다가 다 못하고 그래요.”
할머니는 ‘외롭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돌봐줄 이가 없으니 허리 통증이 극심해도 허리띠를 질끈 동여맨 채 차가운 벽에 기대어 참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본당에서 설과 추석을 맞아 쌀을 보내주고, 인근의 본당 교우 김경순(모니카)씨가 가끔 할머니를 찾는다. 김씨는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돌봐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30년 전, 할머니는 종로에서 생선 등 물건을 떼다 파는 행상으로 살림을 꾸려갔다. 방아리로 이사하게 된 것은 깊어가는 남편의 병 때문이었다. 행상으로 번 돈을 남편의 치료비로 모두 쓰고 남편이 선종한 후, 새롭게 터를 잡은 이곳에서 신앙을 알게 됐다. 2년 전만 해도 30분을 걸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성당에 올만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
“얼른 죽어서 하느님한테 갔으면 좋겠다고 기도해요. 영감 곁에 누워있으면 좋겠는데. 잘 때 얇은 이불 뒤집어쓰고 자면 이가 덜덜 떨려. 씻을 수 있으면 좋은데, 뜨거운 물이 안 나와서 목욕도 못 해요.”
할머니는 자주 다리가 저리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바닥의 냉기와 외풍으로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듯 했다. 도배지가 덕지덕지 붙은 화장실 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대단했다. 지금, 할머니의 겨울은 어느 때보다도 춥다.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잡은 김씨를 보며 말했다.
“나 생각하는 건 성당사람들이랑 자매님밖에 없어. 내가 다 알아. 그 신세를 어떻게 다 갚고 죽겠어. 나를 친정엄마처럼 생각하는 거여.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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