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어도 외국인 선교사들을 박해하는 중국 공산당들의 움직임은 줄어들 줄 몰랐다. 예수회 임대례 신부의 사례를 살펴보자면, 공산당들은 임 신부를 추방할 이유를 찾기 위해 음모까지 꾸몄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임 신부는 성당 내에서 진료소와 의원(醫院)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위생국(衛生局) 관리들이 이곳의 약을 싹쓸이 해갔다. 그리곤 곧바로 임 신부를 체포해 감옥에 가둬버렸다. 임 신부에게 씌워진 죄목은 그동안 가짜 약을 환자들에게 복용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민재판을 열고, 어디선가 품질이 나쁜 약과 가짜 약을 구해와 늘어놓고는, 바로 임 신부가 환자들에게 준 약이라고 악선전을 했다. 그 모습을 본 한 수녀가 전시 되어있는 약들은 임대례 신부가 사용한 약이 아니라고, 그 약과 다르다고 증언하자, 수녀들은 물론 신자들 중 누구도 임 신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감금시켰다. 외출도 못하게 된 임 신부는 당장 식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광동성 안량성당.
추방되기 전에 감옥에서 겪은 추위와 배고픔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감옥에서 무염(無鹽),무유(無油)하고 조미(調味)를 하지 않은 죽을 조금씩 받아먹었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여름에 체포될 때 입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겨울을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때문에 추방되어 홍콩에 도착한 신부들 중에는 너무나 피골이 상접해 친구 신부들조차 알아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상구(商丘)교구 내 외국인 선교사들은 1951년부터 1954년 사이에 모두 추방당했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은 당시 중국 정부측에 자국의 선교사들을 석방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아 한국인 신부들이 석방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이어졌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