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톨릭대학교에서 학장직을 연임하던 때인 1984년 방한하신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전례 관계로 수행하고 한국 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위원회 전례분과를 주관하면서 건강이 매우 쇠약해졌다.
나는 학장직 그만두고 오스트리아 포라우(Vorau)의 조그만 병원을 경영하던 수녀원에서 1년간 요양한 후 1986년 1월 수원교구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에도 서울과 수원가톨릭대학교에 출강을 했다. 건강이 호전된 후 김남수 주교님께 작은 시골 본당을 맡겨 달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런 본당이 없으니 수원가톨릭대학교로 갈 것을 권하셨다. 3번이나 거절했으나, 결국 순명하고 어떤 직책도 맡기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1987년 8월 수원가톨릭대학교에 돌아왔다.
하지만 주교님께서는 반년도 되지 않아 학장직을 맡기셨다. 결국 수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학장직을 수행하면서 첫 사제들을 배출하는 기쁨을 누렸다.
인천, 춘천 ,원주교구가 신학생들을 보냄으로써 입학 정원은 40명에서 차츰 증원해 100명으로 늘려갔다. 정원이 늘어날수록 수용문제가 발생했다. 인천교구장 주교님께 인천교구 신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따로 지어, 교구 신부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학교에 나와 강의를 듣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이후 인천교구에서도 신학교 설립의 의지가 표출됐고 1996년 강화도에 인천가톨릭대학교를 신설, 지금까지 많은 결실을 맺고 있다.
1992년 학장직을 내놓고 대학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다, 2002년 정년퇴직과 함께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로 서임됐다. 그 후에도 4년간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봉직하다가 2006년부터 원로사목자로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정식으로 본당 사목생활은 못했지만 신학교에서 사제 양성에 힘써왔다. 젊은 신학생들과 미사, 성무일도 등을 통해 신심생활을 충실히 할 수 있었다. 많은 사제 양성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 그들의 사목활동이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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