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정상 등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뽈레뽈레(천천히)’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자만심에 서둘러 올라간 것이 화근이었다. 끝까지 올라가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는 했지만 환희와 감사로 가득 찼다. 주님께서 못난 나를 새롭게 추슬러 주시고 새로운 소명을 안겨주시기 위해 이곳까지 불러주셨다는 생각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시 요한네스버그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 아프리카에서 해야할 일을 찾기 위해 당시 잠비아 땀부라는 곳에서 원주민 사목을 하던 유근복(빅토리노) 신부님을 찾아갔다. 유 신부님은 오지 마을에 혼자 들어와 6~7년 동안 그곳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길도 내고 토지를 개간해 양식을 생산하고, 성당도 지어 신앙공동체를 이루면서 열심히 지내고 계셨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남루한 모습이기는 하나, 환하게 웃는 맑고 티 없는 그들의 순수함에 완전히 매료됐다. 앞으로 이들과 함께 산다면 매우 신나고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마음은 아프리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느님과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나 자신의 사제생활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아프리카 선교는 반드시 해내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고민은 어디로 갈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달반 가량을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 곳을 찾으려고 했다. 그때 남수단 톤즈와 아강그리알도 가 봤지만, 나이가 많은 내게는 그곳의 기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여건이 적합하지 않아 최종적으로 잠비아 솔외지 교구 마냐마라는 곳에 정착하게 됐다. 이곳은 기후도 좋고 사회도 안정돼있었다. 무엇보다도 솔외지 교구는 잠비아에서 교세가 가장 열악해 외국인 선교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살아보니 정말 하느님께서 내게 가장 적당한 장소를 마련해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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