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과 설날이 겹친 사실만으로 사제는 기분이 좋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정말 행복해집니다. 사실 명절 귀향길은 고생길입니다. 그럼에도 선뜻 포기하려 들지 않습니다. 길이 막혀서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고향을 향한 마음, 부모님을 뵙고 가족을 만나려는 간절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겠지요.
믿음의 길도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길이 결코 수월치 않은 줄 알면서도 힘들고 어렵고 고달플 것을 예상하면서도 더러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그분을 뵙고 그분을 만나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러 방해에 부딪히고 시련이 있을 줄 예상하면서도 주님을 향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는 진정한 기쁨과 위로, 평화와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나아간 그 길의 종착지에서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때문에 믿음인은 도중에 차가 밀릴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고생스러울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는”(2코린 4,8-9) 희망을 살아갑니다.
언젠가 “세상에서 사탄이 가장 성공한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사랑할 여력이 없는 나약한 존재로 여기게 만든 것”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비하시켜 자신은 예수님의 명령을 말씀대로 살아갈 재간이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사탄의 꼬드김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이 글에서 교회의 소임을 적극적으로 사양하는 일이 겸손이 아니라 사탄의 농간에 휘둘리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사랑뿐이신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그분께서 맡기신 사랑의 사명은 전혀 자신의 몫이 아닌 양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흔히 자신은 한참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주저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은 그저 사제나 수도자들처럼 특별한 신분에서 가능하다 오해하며 지레 ‘포기’하려 듭니다. 주님께서 이르신 완덕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끝없는 신뢰와 끊임없는 도전, 그에 더해서 끈기와 용기가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엄청난 사항을 ‘무조건’ 실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특별한 삶을 살아내라고 강권하십니다. 정말로 ‘폭군’ 같습니다. 하 갑갑해서 이 좁아터진 생각을 넓히려 마음을 쫙 잡아 당겨봅니다.
만약에 사랑을 살아가는 것에 대단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주님께서는 먼저 ‘사랑의 자격시험’을 치르게 했을 것이라 싶습니다. 꼼꼼하게 점수를 매기고 철저하게 적성검사까지 마친 후에 ‘사랑 자격증’을 주셨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무 과정 없이 무조건 무작위로 우리를 뽑아 사랑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야말로 우리 속에 사랑의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귀띔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우리 안에 마르지 않는 당신 사랑을 푸지게 공급해 주실 것이란 약속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당신께서 넣어주신 사랑의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일깨움을 얻습니다. 우리가 기술이 아닌 진심으로, 술수가 아닌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으로 꾸려 갈 것을 기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주님께 얻은 사랑을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놓칠 수 없는 최고의 기쁨임을 기억합니다. 이 능력을 사용할 의지를 잃고 미적대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 주님께서 얼마나 안타깝고 안쓰러워하실지 충분히 헤아려집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눈 빠지게 기다리시는 주님을 실망시키는 ‘나쁜 짓’이라는 걸 깊이 새깁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사장된 우리에게 귀한 축복의 언어를 일러주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불러 축복해주면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언약하십니다.
기쁜 설, 아직 복음을 모르는 친지와 가족들에게 이 축복을 고스란히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꼭 돌아가야 할 ‘아버지 집’ 이야기도 들려주는 은혜의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먼 길 고생을 마다치 않고 꼭 가야 할 ‘아버지 집’이 있습니다. 모두 모두 새해에는 더 큰 복 누리십시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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