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본당 주임 신부님과 ‘예수님의 치유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뜬금없이 신부님은 자신의 청년시절 추억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강 신부, 내가 예전에 신학교 들어가기 전 일반대학 다닐 때는 술을 좀 많이 마셨어. 그 후 신학교 들어가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지.
어느 날 대학 친구들하고 낮부터 막걸리를 마신 다음 조금 일찍 집에 들어간 적이 있어. 술 때문에 피곤해서 내 방에 들어가 잠을 자는데 밤 10시가 다 돼 아버지가 갑자기 내 방에 들어오시는 거야. 그러더니 나를 깨우시면서 어머니가 아프니 약국에 가서 감기약 좀 사오래.”
“그때 술은 좀 깼어?”
“당연히 아니지. 하지만 할 수 없잖아, 어머니가 아프다는데 가야지. 그래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는데 아버지는 내 모습을 가만히 보시더니 ‘애야, 됐다. 그냥 자라. 내가 다녀오마’ 하시는 거야.
나는 속으로 ‘내가 갈 수 있는데’ 하면서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버지는 다시 방에 들어가서 어머니의 몸 상태를 확인한 다음 옷을 입으시고 대문 밖을 나가셨어.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아, 어머니 곁에는 저렇게 든든한 아버지가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늦은 밤이었고, 밖에 뭔가 사러 나가기에는 불편한 순간이잖아. 그래서 귀찮은 마음이 들면, 그런 일을 누군가에게 시키고 싶잖아.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사소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손수 움직이시더라. 바로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어.”
“야, 아버님, 정말 멋있다. 그런데 그날 일이 왜 그리 인상이 깊었어?”
“불편함을 무릅쓰고 손수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큰 믿음이랄까, 그런 것이 생기게 됐어. 그날 이후 신부가 된 후에도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불편하더라도 직접 하려고 해. 때론 누군가를 시키면 편안할 수 있겠지만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가 직접 해.
예수님도 그렇게 사신 것 같아. 치유의 힘을 그분만이 가지셨지만, 성경에 보면 제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그런 권한을 주셨다고 기록돼 있잖아. 그러기에 어떠한 치유를 바라며 예수님께 다가오는 사람들 중에 때론 사소한 치유들에 대해서는 제자들을 시킬 수도 있었거든.
하지만 예수님은 치유의 원의가 가볍던, 중하든 간에 직접 다가가서 손수 치유해 주시잖아. 그 모습을 묵상하면서 나는 늘 아버지가 생각이 나.”
“사람을 손수, 직접 돌보시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야, 감동이다!”
“강 신부! 살면서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손발이 고생할 것 같아 미루거나 다른 사람을 시키고 싶을 때가 많아. 하지만 그런 불편함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순간인 것 같아.”
살면서 불편한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때론 그런 일이 손발을 고생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며 다가가는 일, 그것이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 공감이 갑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마음, 결국 자신을 치유하는 순간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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