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끊기’ ‘술 끊기’ ‘스마트폰 끊기’.
가톨릭신문 기자들이 사순절을 맞으며 일상 안의 ‘즐기고 좋아하는’ 습관들을 절제해 보는 실천 프로그램, ‘작은 절제로 실천하는 기자들의 도전 40일 -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이하 기자들의 도전 40일)’ 의 시즌2에 도전한다. 예수님의 부활, 파스카의 축제를 준비하면서 통회와 보속 그리고 희생으로 재(齋)를 지키는 사순절의 뜻을 몸으로 살아보기 위함이다. 지난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준비된 기자들의 도전 40일에는 이주연 기자(커피 끊기), 서상덕 기자(금주), 조대형 기자(스마트폰 끊기)가 참여한다.
‘커피 끊기’ 이주연 기자
‘커피’ ‘커피’ ‘커피’.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을 앞두고, 커피에게 절연장(絶緣狀)을 보내기 앞서 결연함을 북돋우기 위해 주문을 외우듯 ‘커피’ 단어를 중얼거려 본다.
재의 수요일 13일 0시를 기해 40일 동안 일상에서의 커피를 일절 끊어보는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기자들 스스로 참여해 보는 사순절 기획에 ‘예스’를 표한 것은 ‘이번 시기엔 선배님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글거리며 떠미는 후배 기자들의 ‘꼬드김’을 떨쳐버리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사실 습관처럼 하루의 많은 시간을 커피와 함께 하는 입장에서 마음 한편에서는 ‘커피 한잔의 즐거움’을 참으며 다소나마 사순절 의미를 체험하는 나 자신을 보고픈 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사 녹을 먹은 연차 만큼 그간 여러 차례 사순절과 관련한 기사들을 취재하고 작성했던 경험이 있지만 한편 얼마나 극기와 절제, 희생, 사랑, 실천이 앞서는 사순시기를 살았던가 반성하는 고백의 의미이기도 했다.
‘쿨’ 한 듯 결정을 하긴 했지만, ‘커피 없이 하루하루를 넘기는 게 가능할까’ 걱정이 밀려왔다. 커피 없는 나날을 생각해 본다. 벌써부터 금단증상이 오는 듯 하다.
그윽한 향을 집안 가득 퍼트리며 ‘쪼로록’ 커피머신에 떨어지는 모닝커피 소리를 들으며 하루일과를 준비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출근 준비가 바쁘더라도 한모금이 될 망정 커피맛을 음미하는 짧은 여유를 지나치지 못한다.
업무 속에서도 커피 한잔은 얼마나 큰 ‘일’과 ‘쉼’의 친구인가. 마감을 하는 중 제대로 기사가 풀리지 않아 잠시 멈춰야 할 때, 그리고 전쟁을 치르듯 탈고를 한 후, 또 취재나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느림과 여유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어김없이 곁에 두게 되는 가장 친근한 대상이기도 하다.
잠시 마음과 몸이 피곤해 질 때 들렀던 친근한 카페에서의 뜨겁고 향 깊은 아메리카노, 풍미 가득한 카푸치노, 악마의 유혹 같은 에스프레소 커피의 매력을 어떠한 것에 비길까. ‘커피한잔 하자’는 표현 속에서 찾아지는 ‘마음’과 ‘인사’의 이미지는 또 항상 얼마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던가.
이제 40일 동안은 이러한 커피와의 향긋한 인연을 끊어야 한다. 커피로 인해 가졌던 기쁨과 즐거움을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놓아보는 작업을 시작해 보는 것이다. 카푸치노 커피 위 얹혀진 거품위에 ‘예수님’을 새겨 넣어 본다. 그리고 그 작은 절제를 통해 아껴진 것을 주변의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자는 결심을 덧붙인다. 커피를 마셔야 할 상황이 발생할 때 마다 돼지저금통의 배는 불러지리라. 고통스럽겠지만 보람이 느껴지는 상상이다.
기사를 준비하며 찾은 자료 중 2009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있다. ‘모든 것에 대한 사고 방식을 바꾸라’(Change The Way You Think About Everything)라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 또 물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이번의 커피끊기 노력은 사순시기의 뜻을 실천해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간 모른채 지나쳤던 새로운 삶의 가치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긴다.
‘금주’ 서상덕 기자
헉! 금주라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안다. 술과 나라는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내가 있는 자리에 술이 빠진 적이 있었던가? 지금껏 살아오며 백도 아니고 만에 한두 번 있을까말까 했을 것이다. 술은 고사하고 청량음료 한 잔 상상할 수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원주민을 구슬려 기어이 술을 구해 마신 역사의 담지자가 아닌가.
연말연시면 매스컴을 타는 기사 가운데 빠지지 않는 만 19세 이상 성인 1인당 소주 소비량은 내게 의구심으로 다가오기 일쑤였다. 참고로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성인 한 명이 92병씩을 마셨다고 한다. 난 도대체 이 통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달에 그 정도 마시지 않나?’(갸우뚱) 이미 소싯적에 ‘주귀’(酒鬼, 술귀신)라는 별명을 얻으며 ‘1000병클럽’(1년에 소주 1000병 이상 마시는 사람)에 가입한 나로서는 참 해석하기 힘든 노릇이다.
그런 내게 20년 넘게 장복(長服)해온 술을 끊으란다, 사순이란 시기를 핑계로. 거기다 ‘독자서비스’라는 올가미를 씌워서…. 처음 기획안이 나왔을 땐 코웃음을 쳤다. ‘알잖아, 당신들도. 불가능한 이야기 하고 있는 거….’
지금껏 소소한 사고로 병원 출입(?)을 할 때를 빼곤 술에 대한 생각을 끊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난생 처음 고통의 시기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리란 말인가! 말인가! 말인가!’ ‘안 돼, 안 돼. 불가능한 얘기야!’ 내 속에서는 또 다른 내가 아우성을 쳐댔다.
‘너도 알잖아, 불가능한 일이야!’ ‘40일은 고사하고 한 주도 못 갈 걸. 일찌감치 포기해.’
어린아이 손에 제일 좋아하는 과자를 쥐어주고는 무려 40일 동안 먹지 말라고 하는 소리나 다름없는,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일이다.
그런 내가 기어이 불가능할 것 같은 40일간의 도전에 나서려고 한다. (이건 순전히 동료 기자들의 농간에 떠밀려서다.) 흑, 벌써부터 밀려오는 답답함에 가슴 이곳저곳이 저려온다.(정말이다.) 혹자는 그깟 40일 동안 술 끊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말은 진정한 주당을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가족애가 넘치는 사람에게 40일 동안 가족 얼굴은 보면서 말 한마디 붙이지 말고 지내보라고 해봐라, 아마 그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에도 사순 시기가 돌아올 때면 비장한 각오로 새로운 다짐을 하곤 했지만 이번은 좀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생각하기 힘들었던 결심을 했으므로….
내 속 깊은 곳에서 이런 기도가 떠오른다. ‘제게 특별한 능력을 주신 주님. 당신이 허락하신다면 이 능력을 뛰어넘는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제가 당신의 힘을 빌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게 하소서.’
주님만을 의지해 내 삶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일에 나선다. 독자 여러분도 응원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스마트폰 끊기’ 조대형 기자
직장인 조모씨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길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음악을 듣고 다운 받은 전자책을 읽는다. 게임, 은행 업무, 영화 감상도 한 뼘 크기의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수는 30여 개. 갖고 있는 충전기는 3개, 배터리는 4개에 달한다. 사무실, 집, 차 등 어떤 장소에서도 충전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췄다. 끼니를 걸러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는 참아도, 휴대전화 ‘밥 주세요!’ 소리는 불안해서 못 견딘다는 조씨는 전형적인 스마트폰 중독자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이 중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례의 조모씨는 다름 아닌 기자 본인이다. 기자는 사순시기 동안 스마트폰을 끊기(?)로 했다. 살면서 금주와 금식은 해봤어도 금(禁)스마트폰은 처음이다. 사순 기획 관련 아이디어 회의가 열리던 날, 절제의 삶을 기자들이 직접 실천해보기로 했다. 금주, 금연 등 단골 메뉴 말고 뭔가 새로운 소재를 고민하던 차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 과연 스마트폰 없이 사는 40일은 어떨지 궁금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체험 역시 아이디어를 낸 기자의 몫으로 돌아왔다. ‘아차’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이번 결심에 앞서 과연 내가 스마트폰을 끊어야 할 만큼 ‘중독 상태’인가를 고려해야 했다. 만일 현재 내가 중독이 아니라면 사실 이번 실천이 큰 의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에 인터넷을 검색했다. 물론, 이때도 스마트폰을 이용했다. 마침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상담대응센터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중독 자가진단이 있었다.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마치 법정에서 선서하듯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려고 애썼다. 진단 결과 기자는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이었다. 건강한 사용과 사회적, 직업적 기능 수행을 위해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필요하단다.
이제 동기부여는 분명해졌다. 40일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스마트’한 삶을 포기해보겠다는 결심이 섰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스마트폰 없이 사는 40일이 뭔 대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에게 있어 휴대폰은 ‘전화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멸종위기 ‘피처폰(스마트폰보다 낮은 연산 능력을 갖춘 저성능 휴대 전화)’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도전에 가깝다. 아울러 의미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단순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신앙서적 10권 독파를 다짐했다. 앞으로 40일 동안 기자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아닌 신앙서적이 들려 있을 것이고 신앙적으로 더 ‘스마트’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 책상 위에 아직 할부가 20개월도 넘게 남은 최신형 스마트폰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 반짝임이 내 눈물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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