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결심’과 달리 출발선에서부터 수없이 부딪히는 난관들. 아름다운 40일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 ‘커피 끊기’ 이주연 기자
개인적으로 평소 늘 마시던 커피가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힘들게 오른 산 정상에서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르며 뜨거운 커피향을 맡을 때가 그렇다. 또 비가 내려 사방이 촉촉하게 짙은 회색으로 가라앉은 시간에 빗소리를 벗 삼아 커피 한잔을 음미해 보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더해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여행지에서 커피를 접할 때이다. 낯선 곳, 낯선 거리에서 익숙지 않은 커피를 시도해 보는 재미도 그렇거니와 특히 아침 식사 시간에 맛보는 커피는 일상을 떠난 설렘을 되씹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아뿔싸, 그런데 사순절 커피 끊기는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재의 수요일을 외국 출장길에서 맞게 된 것이다. 떠나면서부터 한숨이 나왔다. 동료들도 커피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고, 공항에서 사장신부님께 출국 인사를 드렸더니 ‘커피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견딜 수 있을까. 바윗돌처럼 무거운 부담감이 엄습해 온다.
출장지에 도착해서도 좌불안석. 예전 같았으면 짐을 풀고는 바로 숙소 커피숍이나 인근 카페를 찾아 커피 한잔으로 일정을 시작 했을 텐데, 참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예감대로 아침식사 시간이 고역이었다. 식당 종업원이 커피 주전자를 들고 수시로 내 주위를 맴돌며 ‘Coffee(커피)?’ 라고 물어댄다. 고문이다. 그들이 오갈 때 마다 코끝을 스쳐가는 구수한 커피의 잔향이 원망스럽다.
위기는 재의 수요일 다음날 왔다. 취재 장소가 옮겨져 숙소가 달라졌는데, 아침 식당을 찾아 내부를 둘러보던 중 ‘헉’ 소리가 났다. ‘기운’이 느껴지는 빨간 색상의 근사한 커피 머신이 눈에 빨려 들어왔다. 대량으로 끓여서 커피를 제공하는 호텔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즉석에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만드는 기계와 함께 전담 바리스타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정말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갈등의 순간을 들킨 것처럼 주위를 둘러봤다. 줄을 서서 ‘카푸치노’ ‘에스프레소’를 자유롭게 주문하는 사람들. 그들의 커피 잔이 커다랗게 확장돼 눈앞에 다가왔다.
마음속에서는 유혹의 소리들이 울려왔다. “누가 보기나 하나? 알기나 하나?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 돼지 저금통 부풀리는 것도 좋은 일 일 수 있어. 이렇게 훌륭한 커피를 마다하는 것은 식당 측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하지만 순간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유혹에 빠지기에는 갈 길이 멀다. 지금 포기하면 ‘아름다운 40일’의 기약은 정말 덧없어 질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뜨거운 레몬차로 달랬다.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그렇게 참아내고 이겨내며 지켜가는 나와의 약속은 곧 ‘사순’의 의미를 더 깊이 받아들이는 은혜로움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
(사진 이주연 기자)
■ ‘금주’ 서상덕 기자
지난 번 기사가 나간 후 난리가 났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아는 이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사돈네 동서부터 처남에, 어떻게 알았는지 평소 연락 없던 동창 녀석에 후배들까지….
난리의 요체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예상했던 대로 ‘어쩜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잘해보라’는 이들이었다. 위로의 말도 많이 들었다. “나도 술 끊어봤어”라는 말만 안 했어도 밉진 않을 텐데….
두 번째 부류가 좀 괘씸(!)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심을 했냐”는 거다. (누가 하고 싶어 했남.) 내가 술을 안 마시면 술자리가 재미없다나 뭐래나…. 내가 뭐 술자리 깍두긴가. ‘으이구, 남의 속도 모르고…’
“40일 동안 술 끊으면 떼돈 모으겠다”는 소리는 백미다. 격려라고 하는 소린지….
그래, 40일 술값 모으면 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내 머릿속엔 내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다. 공개적으로 금주선언을 해놓고 얼마 못가서 무너지면 내 체면도 체면이려니와 이 기획이 초반부터 차질을 빚을 터인지라 머리가 아프다.
술을 안 마시기 위해선 술자리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당연한 이치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술자리가 있는 데라면 몇 시간 택시를 타고서라도 쫓아갔다. 다른 사람들이 다 술상에 얼굴을 박고 곯아떨어졌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막잔을 비우던 추억…. 이젠 체력이 달려 가능하면 그런 짓은 더 이상 안 하려고 한다.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종종 하는 거 보면….)
그런데 기자라는 직업상 식사자리가 술자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으레 나오는 반주가 2차 3차로 이어졌던 게 하루 이틀인가. 이 때문에 원하지 않던 고민이 생기고 말았다. 비상한(!) 의지로 술을 멀리하고 있지만 술 앞에 앉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마음. 그래서 가능하면 술자리에 끼지 않는 게 좋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다 보니 술자리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마저 생겼다. (참 가지가지 한다.)
금주는 내 건강에도 적신호를 보낼지 모른다. 그나마 술잔을 들 때 하던 팔운동도 못하게 됐으니 말이다. 출퇴근 때의 걷기와 술자리에서의 팔운동이 내가 하는 운동의 거의 전부였는데…. 거기다 지금 겪는 이 스트레스…. 가히 치명적(?)이다.
“아, 나 못 살아”하는 소리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다. 아, 나의 40일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진 조대형 기자)
■ ‘스마트폰 끊기’ 조대형 기자
음력 설 연휴가 시작되기 무섭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줄기차게 들어온다. 카카오톡에 개설된 단체채팅방에서는 안부인사와 함께 새해 덕담들이 오갔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카톡’ 한 적이 있었던가.
평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메시지 하나하나가 눈에 밟힌다. 당분간 메시지를 받을 수 없으니 문자메시지나 전화로 연락 달라고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친구들이 요즘 누가 문자메시지를 보내느냐며 핀잔을 준다. 한 친구는 “너 때문에 앞으로 모임 날짜를 정할 때 귀찮아졌다”며 볼멘소리를 내뱉는다. 또 다른 친구는 아예 스마트폰이 아닌 휴대전화를 끊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정색하며 “남 일이라고 그렇게 막 말하는 거 아니다”라며 화를 내버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피처폰(스마트폰보다 낮은 연산 능력을 갖춘 저성능 휴대 전화) 구하기에 나섰다. 40일간의 체험을 위해 피처폰을 새로 구매하는 것은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주위 사람들에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 피처폰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생각보다 피처폰은 빠른 속도로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나 보다. 묻고 물어 어렵게 지인에게 피처폰을 빌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배터리는 한 개뿐이고, 버튼은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눌리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어 그 길로 서비스센터에 맡겼다.
수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리가 다 된 피처폰을 물티슈로 정성스럽게 닦는 모습을 보더니 서비스센터 직원이 안타까운 눈초리로 스마트폰 새로 하나 하란다. 요즘 저렴하게 잘 나왔다면서, 젊은 사람이 유행에 뒤처져서야 되겠느냐고 충고까지 덧붙인다. ‘나도 댁만큼 잘 알고 있다’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헛기침이 나왔다.
다음 순서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부를 피처폰으로 옮기는 작업. 이건 근처 통신사 대리점에서 해결했다. 직원은 ‘스마트폰 새로 구매하셨나보다’며 호들갑이다. “아 그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있는 전화번호를 피처폰에 옮기는 것”이라고 재차 설명하자 잠시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5분도 안 돼 옮겨준다.
지난 13일 재의 수요일. 스마트폰에게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앞으로 동고동락 할 피처폰에 숨을 불어 넣는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이 내게 ‘종료 여부’를 묻는다. 스마트폰은 ‘디바이스(기기)가 곧 꺼집니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더니 이내 흙빛으로 변했다. ‘흙에서 온 것은 흙으로 돌아가라’로 시작되는 사순시기, 나는 다시 피처폰으로 돌아왔다.
(사진 조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