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전인 1985년 미국 달라스에서 열린 과학과 종교에 관한 회의석상에서도 앨런은 이미 유신론자들의 좌석에 자리를 잡았었다. 여기에서 빅뱅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우리를 제1사건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더 멀리 있는 제1원인까지는 데려다 줄 수 없다. 물질, 시간, 공간, 에너지의 갑작스런 출현은 태초에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하버드대학교의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 오웬 깅그리치도 빅뱅이 유신론적 세계관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결론을 내렸고, 생화학자 케니언도 이전의 입장을 철회하고 세포 분자의 엄청난 복잡성과 DNA의 특성들은 생명의 설계자를 대변하는 증거라고 믿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 과학자들은 과학적 원리를 무시한 믿음으로 종교를 갖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헌신하는 과학의 증거들에 의해 신앙으로 인도된 것이다.
물론 모든 과학자들이 이처럼 과학의 끝에서 신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로써 볼 때, 과학이 결코 종교의 절대적인 적대자는 아닐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증명된다. 역으로, 어느 종교인이든 우주의 나이를 150억 년으로 추산하는 과학자를 향해 성경에 나온대로 창조주가 지어낸 세상의 나이는 이제 겨우 6000년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당신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아니라고 우긴다면 이 또한 과학과 종교를 돌이킬 수 없는 적대적 관계로 모는 일이다.
▲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헌신하는 과학의 증거들에 의해 신앙으로 인도됐다.
바로 이 때문에 교회는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복음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표시하고 있다. 특별히 교회는 신앙의 해를 맞아 진정한 과학의 정신에서 벗어난, ‘합리적 확실성이 과학적·기술적 발견에 한정된 것으로 여기는’ 오늘날의 과학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이에 대한 사목적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을 보편교회와 주교회의, 그리고 각 교구에 요청하고 있다.
교황청이 신앙의 해를 맞아 발표한 사목적 권고를 담은 공지문은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신앙의 해 기간 동안 각종 ‘호교론적인’ 책자와 리플렛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학계와 문화계에서 심포지엄과 토론회, 세미나 등을 통해, 특별히 가톨릭 대학들에서 신앙과 이성의 창조적 대화를 새롭게 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편협한 과학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앙과 이성의 지속적인 대화를 위한 신학화의 작업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미 세속화된 세계 안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신앙적인 사고를 위협하는 온갖 문화적 경향들 안에서 생활하는 일반 신자들은 ‘과학주의’의 위험성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종교가 하던 역할을 이제는 과학과 기술의 성취가 담당하게 된 오늘날의 사회에서 교회는 더 이상 일반 신자들의 느슨한 신앙 태도,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비난하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교회의 신학자들이 과학주의적 사고방식과 그 위험성에 대해서 경각심과 관심을 갖고 탐구,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통해서 교회와 신자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교회는 신자 과학자들의 몫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과 사목적 배려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신이 헌신하는 과학적 연구와 신앙의 가교를 건설하고 있는 이들 신자 과학자들이 신앙과 이성,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지니고 있는 지혜와 믿음은 오늘날 교회 안의 신자들이 과학주의에 매몰되거나 치우치기 쉬운 위험성에 대한 해독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