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따로 있지만 고통은 피해자의 몫이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당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고통이 은영(가명·23)씨 가정을 덮친 것은 2011년 4월 봄날의 일이었다.
한강 둔치 매점 등에 물건을 납품하며 살아가던 그의 부모는 한강 둔치 재개발로 매점들이 사라지면서 함께 주저앉았다. 사업이 부도가 나자 아버지(52)는 택배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탄 오토바이는 9번의 사고를 통해 아버지의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 놓았다. 어머니가 파출부, 화물차일 등을 하고, 은영씨도 아르바이트로 대학입학을 준비했던 그날, 시간은 멎었다.
지하 셋방에 강도가 들어온 것이다. 늦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혼자 곤한 잠에 빠져있던 때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고,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 범인도 검거하지 못한 채 은영씨는 온몸으로 괴로운 날들을 맞아야 했다. 가족은 궁핍한 경제상황 탓에 사건이 일어난 지하 셋방에서 6개월을 그대로 살아야만 했다. 어머니 박옥순(60)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 다급히 문을 열고 처음 마주친 딸아이의 모습은 제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해요.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합니다. 부모가 못나서 지하 셋방에서 살다가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딸아이 하나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것이 한이 돼서 정말 너무 미안해요.”
사건 이후 은영씨는 빠르게 변해갔다. 남자들을 두려워하고 지하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친구들을 비롯한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자해를 시도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태였던 것이다. 2011년 10월 6개월 동안 성 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비가 부족해 그마저도 현재는 중단한 상태다. 병원 퇴원 후 주변의 도움으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인 3층 집으로 옮겼지만 얼마 전 아래로 뛰어내려 다리를 크게 다쳤다.
“이제는 강도를 원망하는 것보다 딸아이만이라도 건강해지길 기도합니다. 때때로 제가 힘에 부쳐 ‘같이 죽자’고 이야기하지만 오죽하면 그럴까요. 딸이 죽을까봐 24시간 붙어있는데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제가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우리 아이 아직 너무 예쁘고 어린데, 이렇게 인생이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가수를 꿈꾸던 은영씨는 이제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은영 씨의 방 한편 낡은 서랍에는 그가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 가수 f(X)의 사진스티커가 군데군데 붙어있다. 어머니는 아직도 은영씨의 한 마디를 잊지 못한다. “엄마가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어머니는 오늘도 스물 셋, 은영씨의 봄날이 다시 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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