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를 꿈꾸던 아이가 있었다. 유아세례를 받고, 주일미사를 궐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매일 아침·저녁기도를 봉헌하며 자라난 아이는 오스트리아 빈 구스타프 말러 음악원의 정교수 및 부학장이 됐다. 이일세(베드로·35) 교수의 이야기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 쇤보른 추기경님을 만났는데 추기경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주님의 말씀으로 요동치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할 때, 진정시켜주는 것이 음악이라고요. 음악은 또 다른 주님의 말씀이라는 거예요.”
또 다른 주님의 말씀은 그의 꿈을 사제에서 첼로를 전공한 음악인으로 바꿔놓았다.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국인으로서 교수가 되기까지 그에게 어려움도 많았다. 음악에 대해 대단한 자존심을 가진 현지인들은 외국인, 특히 동양인들의 음악활동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 14살에 빈 국립음대에 입학해 유학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늘 생각했던 것이 ‘유럽인들보다 조금 더 잘하자’였어요. 처음 학생을 가르치던 것이 10년 전쯤인데, 동양인에 어린 사람이 학생을 가르치려니 친절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저를 보면서 차츰 저를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2004년 국제 콩쿠르에 도전을 시작해 일 년 여 동안 늘 결선에 올랐지만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성실하게 흘렸던 땀의 결실이 결과로 나타나지 않아 힘겨운 때였다. 어느 날 빈에서 27시간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콩쿠르에 참석하기 전, 그는 답답한 마음에 동네 성당을 찾았다. 처음 보는 현지 사제에게 ‘아무리 해도 되지를 않고,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신부님은 제가 저이기 이전에, 주님의 도구이고 종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어요. 부담을 버리고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으라고요. 결과 또한 제 결과가 아니라 그분의 결과라는 말씀과 함께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복음의 말씀을 사실은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날 그는 생애 처음 금메달을 땄다. 1등을 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주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더 기뻤다. 그에게 신앙과 음악은 삶을 이끌어주는 하나의 거대한 의미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좌충우돌 성장통을 거쳤던 그는 이제 세계 최정상급 교수진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구스타프 말러 음악원에서 전 세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학생들을 보면서 자신의 유년을 떠올리고 그만큼 가르치는 손끝에 정성을 다한다. 올해 9월 1일에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잊혀진 작품들, 위대한 예술가들의 영혼을 청중에게 알리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리고 음악이 주님께서 창조하신 얼마나 위대한 예술인가를 생각하면 큰 책임감과 곧은 신념도 가져야 하겠지요. 한국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님의 뜻을 전하는 주님의 도구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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