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 개인주의화로 교회 가르침과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점차 시들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천주교회를 창립한 선조들의 신앙과 신심을 본받는 일은 더욱 절실히 요구됩니다.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 또한 교구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몫인데요.
우리 교구에서는 지난 2007년 12월 순교자 시복시성추진위원회를 구성했었습니다. 이에 앞서 저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추진주교특별위원회의가 시복시성 대상 순교자들에 대한 공적 경배 행위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한 ‘현장조사’에 동참하기도 했는데요. 우리의 순교선조들의 모습은 오늘날 순교신앙을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새롭게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순교신앙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2008년 ‘복음화를 위한 작은 외침’지에 실은 글을 통해서도 오늘날 신앙인들이 체험해야 할 순교는 신앙 때문에 신분 또는 재산상 불이익을 당하게 되어도 신앙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똑바로 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바보’ 같은 순교신앙 체험은 눈 한번 감으면 자기가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고 수 천 만원, 몇 억 원이 들어올 수 있다 해도 ‘바보’처럼 이를 거부하고 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볼 것 많고 찾는 사람들 많은데도 소공동체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해 교우들과 친교를 맺고 공동체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위로부터 바보 아니냐는 말을 듣는 것도 오늘날 겪을 수 있는 순교체험인데요. 또한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존하고 지구를 살리기 위해 바보처럼 불편을 감수하는 것도 신앙인들이 체험해야 할 순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사회악과 죄가 판치는 사회 곳곳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싸우는 모습도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천해야할 순교체험의 하나인데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그릇된 악법들도 버젓이 존재하고, 공권력으로 정당한 요청이나 국민 개인과 단체의 목소리도 묵살하고 밀어붙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끝까지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외롭고 바보스럽게 그러나 정당한 방법으로 싸우는 일도 순교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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