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신자들에게 그야말로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고 계신 신부님이 계십니다.
늘 검소하고 온유하면서도 겸손하신 신부님은 물질에도 애착이 없어 선물이라도 받게 되면, 잘 모아 두셨다가 본당 신자들 행사 때 신자들과 나누기 위해 몰래 내놓곤 하십니다. 때론 신부님 사제관에 가보면, 책상에는 어김없이 다음 날 평일 강론을 쓰기 위해 놓아둔 연습장과 펜이 있고, 옆에는 그동안 손수 글로 썼던 강론 묶음들이 있으며, 앞에는 초 하나가 켜져 있습니다. 그 모습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얼마 전 신부님은 제게 매주 토요일 저녁 시간에 본당에서 면담식 고백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고백성사 안에서 신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좋은 시간이 되고 있다며 그 기쁨을 나눠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부님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하면 신부님처럼 살 수 있을까요?”
그러자 신부님은 손사래를 치면서 오래 전 자신의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사실 나는 성격적으로나 성향으로 보면 ‘비서’ 혹은 ‘참모형’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해.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기보다 언제나 뒤에서 그 일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나르고 설치하고 망치로 박고 뭔가를 짜고 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거지. 특히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 있을 경우, 그 분들이 어떤 일을 더 잘하실 수 있도록 내가 버팀목이 돼주거나 힘이 돼주는 역할을 하면 그 자체로 뿌듯해. 그러한 참모 역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곤 했었지.
그런데 어느 날 한참 선배 신부님을 만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 그날도 그 신부님과 ‘참모형’ 성향이 적격인 나의 삶을 나누면서 앞으로도 누군가를 뒤에서 밀어주고, 힘이 돼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지.
그러자 그 신부님이 눈을 지그시 감으시며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내게 잊히지 않을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
‘좋은 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들을 위해 힘이 돼 주는 일도 참 좋은 일이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해. 이제껏 누구도 가보지 않은 좋은 길을 열어 가듯,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길을 살고 있는 사람처럼 스스로 좋은 사제의 길을 걸어가 보면 어떨까?’
나는 그날, 마음으로 다짐을 했지. 그래, 나 자신 스스로가 처음 길을 내는 사람의 좋은 모범처럼 스스로 좋은 사제의 길을 잘 걸어가 보리라고. 내 길을 제대로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나는 단지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뿐이야.”
처음으로 길을 내는 사람처럼 스스로 좋은 삶의 길을 내는 것! 예수님이 먼저 시작하신 이 좋은 길, 그 길을 따라 좋은 삶을 살다가, 아니 살아보다가 이 길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이 우리 삶을 보며 ‘저 사람들 예수 닮았다’ 말해 준다면 그래, 그것참 좋겠다 싶습니다. 더불어 제가 걷는 이 길 역시 감히, 아주 감히 예수님 닮은 길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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