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일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묵상하기 참 좋은 은총의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듣는 복음 말씀이 약간 생뚱맞습니다. 거룩한 신앙을 거론하지도 않고 믿음의 본이 되는 인물을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섬뜩한 비극의 현장 소식을 들려줄 뿐입니다. 덧붙여지는 말씀도 고작 자신의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던 주인과 포도 재배인의 대화에 불과합니다. 얼른 귀를 씻어 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시기를 맞아 온통 깨끗한 것만 생각하고 선한 마음만 지니고 싶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소위 묵은 신앙인들을 위한 경고의 나팔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믿음인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이라는 지적이라 싶습니다. 기도도 타성에 젖어 메마른 ‘경 읽기’에 그칠 수 있으며 미사도 길들여진 일상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생각은 따로 놀면서 미사에 참례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몸만 성전에 옮겨 놓을 수 있습니다. 걸음만 오락가락할 수 있습니다. 입술만 달싹대며 기도문만 줄줄줄 외워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겉모습만 신앙적이어서 도무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쭉정이 신앙생활이 가능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엔가 길든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익숙해지는 일입니다. 길든다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에 따라 몸만 움직이는 행위입니다. 어쩌면 천국에 살았던 하와도 천국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지고 길이 났던 탓에 매일매일 새로우신 그분 사랑을 그저 그런 것쯤으로 여겼던 탓에 유혹에 넘어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믿음도 스스로의 생생한 체험 없이 습관이 되고 인이 박여 지낼 때, 매일매일 하느님의 새로움에 다가가지 못할 것입니다. 습관과 버릇에 불과한 죽은 믿음으로 전락될 것입니다.
철이 드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더욱이 철든 성숙한 믿음은 신앙의 햇수나 이력에 전혀 무관합니다. 한마디로 영적으로 철이 나는 일은 세월도 능력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신자로서의 세월만 길어져서 신앙생활에 길이 들어 버리는 일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버릇이라 생각됩니다. 신앙에 철이 들지 않으면 스스로 기도하기도 벅차고 진정한 사랑도 불가능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생활에서 멀어질 것이 뻔합니다. 신앙이 성숙해지지 못 하면 누구나 ‘딴짓’에 한눈을 팔고 ‘죄’에 무디어져서 또 다른 하와가 될 위험이 큽니다. 만날 선악과를 따고 또 따는 일만 번복하며 어리석은 삶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교회 전례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삶에 적용하여 살아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머릿속에 상상하는 신비한 체험을 갈구하기에 앞서 매사마다 그분 사랑을 실천한다고 이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엄숙하고 철저한 형식적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는 매일에서 낙담하지 않고 희망하며 당신 앞으로 나아오기를 바라십니다. 매일의 일상 안에서 아주 조금씩 더 깊고 넓고, 더 너그러워지고 새로워지는 기쁨을 누리라 하십니다. 곁에서 살뜰히 보살피시는 주님, ‘삼 년’을 결코 허송세월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정성을 쏟고 계신 그분의 응원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당신 포도밭 귀퉁이 땅을 차지하고서도 열매 맺지 못 하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서둘러 잘라내지 않으시는 분, 우리의 허약한 심지를 돋워 튼튼히 키워주시려는 당신 마음을 알아달라 하십니다.
성경은 성숙한 믿음인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려주신 믿음의 교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숱한 이야기들은 우리를 일깨우시기 위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분께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사순, 무엇보다 그분께 사랑받는 자신을 느끼게 되면 최고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는 감격의 시간을 체험하면 제일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보탬을 주기 위한 ‘본보기’입니다. 이를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히브 11,40)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너무너무 행복한 사실입니다.
사순, 그분의 말씀으로 삶을 농익히기를 소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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