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세 살이 된 앳된 소녀 욜란다 마참보(Yolanda Machambo)는 집밖에 나가는 게 두렵기만 하다. 같은 또래의 친구 중엔 이미 아이를 둔 엄마가 돼 그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욜란다 또한 성폭행당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세상의 쓰디쓴 맛을 봐온 지 오래다. 박치영 수녀(메리놀수녀회)를 만나기 전까지 심연과도 같은 절망 속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죽음을 떠올렸던 소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짐바브웨서 날아온 소식은 또 한 번 우리의 무관심을 매섭게 꾸짖는 듯하다.
1999년 아프리카에 파견된 박 수녀가 첫발을 디딘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도 장기독재와 가난으로 인한 상흔은 깊게 배어있었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욜란다와 같은 소년소녀들은 한 학기 등록금 35달러가 없어 학교는 꿈도 꿔보지 못하고, ‘미래’나 ‘희망’이란 말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국에서 온 박 수녀는 한줄기 빛이었다.
박 수녀가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선 것은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절망으로 거칠 대로 거칠어진 현지인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그들 가운데서 엿본 하느님의 사랑이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심어온 4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라레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빈민밀집지역 노튼으로 옮긴 게 지난 2003년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임대해 가난한 아이들에게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노튼청소년센터 문을 열자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이들이 몰려들었다. 20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청소년센터는 이제 학기 중에는 200여 명, 방학 때는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몰려드는 ‘희망제작소’가 됐다.
사랑의 힘은 놀라웠다. ‘희망’이란 말조차 몰랐던 아이들 가운데 짐바브웨 최고의 대학에 진학해 방학 때면 센터를 찾아 자신을 키워온 희망을 나눠주는 이가 생기는가 하면, 학비가 없어 꿈을 접을 뻔했던 하라이(Farai)씨는 어엿한 법조인이 돼 희망의 대명사가 되는 등 사연을 접하면 눈물부터 솟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노튼청소년센터가 문을 닫아야 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센터 자리를 빌려주던 초등학교에서 뇌물을 요구해 거절했다 지난해 12월 쫓겨나게 된 것이다. 박 수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미소가 해맑아서 더 슬프다. 더 이상 쫓겨나거나 구걸하지 않아도 될 조그만 터전을 마련해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희망발전소를 세우는 일이 그에게 십자가로 던져졌다. 경기침체로 후원금마저 줄어든 상황에서 홀로 가슴앓이를 하던 박 수녀는 용기를 내 처음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다들 힘드신 것은 알지만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신다면 상상도 못하셨던 기적을 선물로 받게 되실 겁니다.”
※도움 주실 분※
농협 351-0416-253553 예금주(메리놀수녀회) 02-2659-2819
카리타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