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스스로를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겸손한 봉사자’로 자신의 교황직을 시작했던 ‘전임 교황’(Pope emeritus) 베네딕토 16세는 2월 28일 바티칸을 떠나 카스텔간돌포에 있는 교황 여름 별장에 도착했다. 그는 이곳에서 약 두 달 가량 머문 뒤 바티칸으로 돌아가 이전에 봉쇄수도원으로 사용되던 곳에 머물며 여생을 기도와 신학 연구에 바칠 예정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교황직이 종료되는 오후 8시까지 불과 2시간 반 남짓 남겨두고, 약 15분간 바티칸으로부터 헬리콥터로 날아와 차를 타고 들판을 가로질러 카스텔간돌포에 도착했다.
교황이 도착하기 수 시간 전부터 이미 마을 주민들과 순례자들, 그리고 많은 방문객들이 교황 숙소 바깥의 광장을 빼곡하게 메운 채 교황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교황은 도착하자마자 이층, 광장을 내려다보는 발코니에 모습을 나타내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아름다운 피조물들과 여러분들의 우정에 둘러싸여 행복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교황은 이어 “모두 알고 있듯이, 오늘은 지나버린 날들과는 다르다”며 “저녁 8시면 저는 더 이상 교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황은 “저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례를 시작하는 소박한 순례자일뿐”이라며 “나의 온마음, 사랑과 기도, 묵상과 성찰, 나의 모든 내적 힘을 다해서, 저는 여전히 교회와 인류의 선익과 공동선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마지막 축복을 내린 뒤, 발코니 안쪽으로 숙소를 향해서 천천히 퇴장했다.
그리고 교황직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오후 8시가 되자, 문 안쪽과 바깥쪽에 2명씩 서서 교황을 수호했던 스위스 근위병들은 안으로 들어갔고, 베네딕토 교황 재위의 끝을 상징하듯, 육중한 문은 굳게 닫혔다.
역사상 최초로 명실상부하게 재위 중 사임한 첫 교황으로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교황의 역사에서 스스로 내려왔고, 자신의 말대로 후임교황이 누구이든간에 그에게 무조건적으로 순명할 것을 약속했다.
■ 교황의 마지막 트윗, 그리스도를 통한 기쁨 체험하기를 기도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퇴위를 몇 시간 앞두고 마지막으로 보낸 트윗을 통해 “여러분들의 사랑과 지지에 감사를 드린다”며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을 항상 경험할 수 있기를 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에 앞서 2월 27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우리를 위해 외아드님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이라고 기원했다. 교황은 또 24일에는 “(교회 역사에 있어서)이 기념비적인 시기에, 저는 여러분에게 저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해줄 것과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해줄 것을 청한다”고 말했다.
■ 마지막 추기경 회의 참석, 새 교황에 무조건적 순명 약속
교황은 퇴위 날인 2월 28일 오후, 이미 로마에 와 있는 144명의 추기경들과의 마지막 공식 만남에 참석했다.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영적인 유대 속에 있을 것임을 약속하면서, “여러분들이 새 교황 선출의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은 특히 “지금 여러분들 중에, 추기경단 속에 미래의 교황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새 교황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존경과 순명을 드릴 것을 오늘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교황의 마지막 인사를 들은 추기경들은 교황의 말이 끝나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응답했고, 간단한 예식이 끝난 뒤에 추기경들은 일일이 교황과 인사를 나누며 교황의 반지에 입을 맞추거나,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소박한 선물을 증정하기도 했다.
■ 교황 마지막 주례 알현
교황의 퇴위 하루 전인 2월 27일 열린 일반알현 자리는 수많은 풍선, 꽃다발과 깃발, 포스터들, 15만여 명에 달하는 신자들의 환호와 박수, 그리고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연설이 뒤섞여 이별을 기리는 연회장이 됐다. 사람들은 광장을 빽빽하게 채우고 흘러넘쳐 인근 도로까지 가득 메웠다. 쌀쌀하지만 청명한 날씨 속에서 교황은 오전 10시30분 광장에 도착, 15분 동안 서서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교황은 관례대로라면 먼저 교리교육적인 내용의 연설을 할 것이었지만, 이날은 모두 생략하고 자신의 교황으로서의 삶과 사임의 결정을 지극히 사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로 설명했다. 그는 교황 재위 8년 동안을 “기쁨과 빛의 시기, 하지만 어려운 순간들이었다”고 말했다.
“주님은 제게 태양과 산들바람을 주셨고, 풍성하게 물고기를 낚도록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물이 소용돌이치고 역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잠들어계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께서 배 안에 머물러 계셨고, 그 교회라는 배는 제 것도, 우리들의 것도 아닌 그분의 것이기에 그분은 배가 가라앉게 두시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교황 호칭은 ‘전임 교황’으로, 빨간 구두 벗고 갈색 간편화 신을 예정
교황청은 2월 28일 퇴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대한 공식적인 호칭은 ‘전임 교황’(Pope emeritus 또는 Roman pontiff emeritus)으로 부르게 될 것이라고 2월 26일 밝혔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전임 교황에 대한 예우와 호칭, 복장 등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을 비롯한 교황청 관계자들과의 논의를 통해 확정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복장과 관련해, 전임 교황은 흰색 수단을 착용하지만 교황 복장이 간소화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대변인은 설명했다. 베네딕토 교황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색 구두는 앞으로 신지 않고, 대신에 갈색 계통의 간편화를 신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 첫 번째로 지난해 3월 멕시코 레온 방문 중 선물로 받은 ‘자파토스’(Zapatos)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향후 전임 교황의 보안은 바티칸 경찰이 담당한다. 한편 교황을 상징하는 ‘어부의 반지’는 추기경단에게 반납되어 깨뜨려지고, 추기경 때 끼던 주교 반지를 다시 낄 예정이다.
■ 중국교회, 떠나는 베네딕토 교황에게 감사의 서한
교황청 공보실은 교황이 바티칸을 떠난 2월 28일 중국교회의 성직자와 신자들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교황이 중국교회에 보여준 관심과 배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이 서한에서 중국교회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우리가 지고 있는 십자가를 가볍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서한은 특히 교황이 각종 자연 재해로 고통 받는 중국의 국민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줌으로써 각 지역교회와 국제사회가 재해의 현장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도록 배려해주었다고 말했다. 서한은 한편 교황의 퇴위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표시하면서, “계속해서 중국의 양떼들을 돌봐주고, 퇴임 후에도 중국 국민들과 기도 안에서 함께하기를 빈다”고 말했다.
세계교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