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는 것은 아마도 공허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구약성경이 말하는 하느님의 통치라는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 예수님의 기도는 산상설교, 특히 행복선언(마태 5,3-10)과의 관련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표현된 하느님의 통치는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분명한 연속성을 발견한다. 하느님의 통치는 그분의 현존, 해방과 구원, 정의, 평화, 치유, 기쁨, 하느님에게 되돌아가기 등의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특성을 가진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신다. 그리고 행복선언은 이 기도의 내용을 더 풍요롭게 채운다.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하느님의 나라(= 하늘 나라)에 참여하는 이들의 행복과 기쁨을 공표한다. 새로운 삶, 곧 대안적인 삶의 방식인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에 의해 위로받을 것이고, 땅을 차지할 것이며, 해방하는 정의로 채워질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며 그분을 뵙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행복선언의 가르침과 밀접히 관련된다. 이 점 때문에 주님의 기도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할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들이 참여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는 그분의 제자들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이 하느님의 나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과 우리의 현실인 고통, 폭력, 불의, 돌봄의 부족 등을 비교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정의, 평화, 자비, 완전함의 부족으로부터의 회개를 기도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이 사셨던 삶의 방식으로 살겠다고 선택하기, 곧 예수님을 뒤따르기를 결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간구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 정의, 평화를 이루기에 헌신하는 대안적인 삶을 살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는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을 기억케 한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에게 있어 약속의 땅은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가 실현될 자리이다. 주님의 기도가 위치한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백성의 새로운 토라를 가르치신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정의(正義), 곧 올바른 관계의 회복에 대하여 가르치신다.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는 대안적인 공동체를 제시하신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차 하느님은 당신 나라에서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의 실현을 통해 당신의 창조를 완성하실 것이다. 창조의 완성을 위한 이 약속의 빛 안에서 우리는 미래를 위한 희망을 재정립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희망은 이 땅에서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우주적 정의의 실현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마태 19,28) 실현될 새 시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를 향하게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과 다른 창조 세계의 조화를 통해 창조를 다시 새롭게 한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 다시 새롭게 되고 완성될 창조에 대한 희망으로 말미암아 동기 부여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초대한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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