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살아오면서 예상치 못한 날, 생각지도 못한 때, 누군가로부터 영혼 깊숙이 울리는 잔잔한 감동을 경험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 경험이 탄성을 지를 정도의 광활한 장관이나 멋진 풍경을 보는 것도 아니고, 감동 그 자체인 영화나 연극, 그림이나 음악 등의 예술 작품을 마주한 것도 아니라면! 모든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는 훌륭한 분을 우연히 마주치는 그런 순간도 아닌 그저 단순한 날, 평범한 분에게서 그런 경험을 갖게 된다면!
더 솔직히 말해 일상생활에서 함께 생활하기에 너무나 잘 알고 지내는 분으로부터, 노래 선물을 받았는데 거기서 오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그런 감동을 받았다면 어때요, 놀랍지 않나요? 투박한 목소리에 박자도 잘 맞지 않은 노래를 듣고, 눈물 어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녕 서로를 묶어주는 소중한 끈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험하게 합니다.
우연한 날, 선물로 주어진 노래 몇 곡을 듣는 그 몇 분간의 순간이 제 영혼 속에 너무 깊게 박혀버린 추억과 감동이 잘 섞여져서 그런지, 그 기억은 영원토록 제 삶 안에서 왠지 모를 큰 힘으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었던 날은 어느 일상의 평일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오랫동안 살았던 할아버지 수사님께서 느닷없이 제 방에 오시더니 캔 맥주 두 개를 사달라고 부탁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사님은 며칠 동안 심한 감기몸살로 앓아누워 지내셨는데 갑자기 맥주를 사달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사님께 공손히 여쭈었습니다.
“수사님, 며칠 동안 감기몸살로 힘들어 하셨는데 맥주, 괜찮으시겠어요?”
그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그 수사님은 대뜸 “문제없어. 오늘, 맥주 한 잔 잘 마시면 이까짓 감기몸살, 곧 나을 거야!”
평소에 술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마음속으로 그러려니 하면서 이내 맥주를 사러 갔겠지만 그런 수사님이 아니기에 좀 놀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하며 가볍게 옷 하나 걸치고, 수도원 대문 밖을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속으로 ‘세상에, 맥주 마시면 낫는 감기가 과연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맥주 2캔을 사가지고 수사님 방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린 후 조심히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두터운 내복을 입고 계신 할아버지 수사님은 며칠 동안 감기와 싸운 흔적이 역력하고 피로와 힘겨움이 가득한 얼굴로 이불을 걷으시며 앉으셨습니다. “수사님, 맥주 사왔어요!”
수사님은 지그시 감은 눈을 뜨시더니 다 쉰 목소리로 “아이, 고마워. 그래, 시원한 맥주구나. 그래그래, 맥주는 시원할 때 먹어야 최고지.” 할아버지 수사님은 맥주 한 캔을 꿀꺽꿀꺽 다 드셨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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