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금호 1가동 104번지, 주차장 자리를 세내고 고친 작은 옷가게가 있다. 간판 대신 현수막을 내건 이 가게의 이름은 소금창고. 중고 의류 및 잡화 등을 주로 판매한다. 하지만 이 가게는 여느 옷가게와 다르다. 이곳 물건은 판매되기보다 대부분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무상으로 전해진다. 이곳 창고지기 이주희(후안디에고·62)씨는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기증한 의류를 손질하고 분류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게의 운영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다. 1996년 사업에 실패한 후 그의 인생은 엉망이 됐다. 그가 잘 나갈 때, 곁을 지키던 사람들은 사업 실패 소식을 듣고 모두 떠났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술에 의지하며 목적 없는 삶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혼자라고 느끼며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사방이 고립되니 열린 곳은 하늘뿐이었어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이끄심에 내 발길은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성당을 향하고 있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찾은 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완벽히 새롭게 태어났다. 그때부터 그는 온전히 하느님만을 위해 살기로 하고 봉사에 투신했다. 이후 충북 옥천에 있는 무의탁 노인과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무료 요양원에서 4년간 살며 소외된 이들의 손과 발이 됐다. 그는 그곳을 “이기적 삶에서 이타적 삶을 배우며 몸으로 실천한 내 영혼의 사관학교였다”고 회상했다.
“하느님은 세상 죄의 온상이었던 저를 가장 낮은 이들 곁으로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영혼을 위한 그분의 섬세한 이끄심이셨어요.”
2002년 다시 서울로 올라온 그는 서울의료원(당시 지방공사 강남병원)에서 노숙인, 행려병자를 대상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의 별명은 노숙자들의 수호천사였다. 그는 노숙자들이 입을 옷이 없다고 하면 기꺼이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나눴고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노숙자들에게는 알코올클리닉으로 연계해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2005년 6월 서울의료원 호스피스가 발족하면서 호스피스 봉사자로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지금도 금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병원을 찾는다.
봉사는 또 다른 봉사를 낳았다. 그는 서울의료원에서의 인연으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은혜로운집(원장 김한식 수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40대 무연고 지적장애인들과 가족결연을 하고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의 아버지가 돼 주고 있다.
그는 “봉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답안지”라고 말한다. 이렇듯 봉사로 점철된 그의 행복지수는 어떨까 궁금했다. 그는 “인생의 행복은 재물에 달려 있지 않다”며 “내가 가진 것은 예수님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저는 집도 없고 차도 없지만, 예수님과 늘 함께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부자입니다. 평생 하느님이 거저 주신 것을 누리면서 감사하며 살기도 벅찬데 왜 이렇게 세상 것에 매달려서 살아가는 걸까요. 행복한 노년 별것 없습니다. 오늘 내게 주어지는 작은 시련조차도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가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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