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오늘 사건에 앞서 예루살렘에서는 거푸거푸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바리사이들과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갖은 애를 썼음에도 결코 여의치 않았던 과정들을 들려줍니다. 드디어 오늘, 더 교활해지고 훨씬 교묘해진 그들의 작전이 전개된 현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누군가가 나를 그처럼 교묘하게 수를 써서 곤란하게 만들려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불쾌합니다. 속셈을 감춘 음험한 분위기에 몸이 오싹합니다. 비뚤어진 시선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표정에 소름이 돋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찾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유치한 행동은 정말 치사 발칙합니다. 주님께 배움을 청해야 마땅할 처지에 되레 주님을 가르치려 드는 모습도 가당찮습니다. 그들이 소위 하느님을 경외하고 섬긴다는 종교인들이라 생각하니 역겹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한다면서 이리 교활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날 그 현장을 지켜보던 군중들의 모습도 야속합니다. 그들 중에는 분명히 그날 이른 아침부터 성전에 나와 주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이 있었을 터입니다. 그럼에도 그 가르침이 도무지 무용지물인 것을 보니… 힘없는 사제는 허탈해집니다. 매일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쏟아 강론을 들려주지만 빨리도 잊어버리고 팽개쳐지는 현실이 서러워집니다. 사제에게만 사랑과 관용을 요구하면서 오히려 사제를 시비하고 거스르며 코너로 몰아넣으려는 곤란한 일들이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요? 아무 생각도 없이 손에 돌멩이를 움켜쥐는 군중의 이중 심리, ‘덩달아’ 함께하지 않으면 무리에서 왕따를 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심약한 처지가 어림 되어 민망스럽습니다.
그날 주님께서도 그들의 교활함에 훨씬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사탄의 꼬드김에 홀려서 악의 앞잡이가 되어 있는 일이 너무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워 눈에 팽그르르 눈물이 돌았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 눈물을 감추시려고 시선을 내려 땅에 무엇인가를 끼적이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들을 일일이 꾸짖고 단죄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양심에 찔려 회개하기를 기다리셨던 성심을 헤아리게 됩니다.
오늘은 어느 누가 아닌, 나를 보시는 주님의 아프고 쓰라린 마음을 느끼고 싶습니다. 서둘러 단죄하지 않으시고 내 안의 양심을 자극하시는 그분께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주님 사랑의 엄청난 크기에 감격하여 완전한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바오로 사도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아는 지고한 가치’를 위하여 끊어내어야 할 ‘해로운 것’들을 살핍니다. 죄에서 단호히 돌아설 결단을 합니다.
오늘 이 다짐을 내내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오로 사도의 변화가 순식간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라 해를 거듭하며 서서히 무르익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위로를 얻습니다. 그는 코린토 교우들에게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1코린 15,9)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에페소 교우들에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페 3,8)라고 자신을 더 낮추었습니다. 이후 티모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는 세상의 죄인 가운데에 “첫째가는 죄인”(1티모 1,15)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믿음과 사랑도 서서히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라 헤아립니다. 나약하고 허약한 우리이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갈 각오로 스스로를 살핀다면 놀랍고 탁월한 변화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약속이라 믿습니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낮아지고 보잘것없어져서 오직 상대를 높이고 섬기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증거라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죄인과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의 죄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십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죄는 감춘 채 남의 죄만 캐내려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회개하는 일에서 꽁무니를 빼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들처럼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숨기기에 급급하다면 이야말로 하느님 사랑을 죽이는 범죄임을 선포하십니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시는 그분 말씀을 새겨, 매일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는 참 승리자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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