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고등학교 시절을 ‘성경’으로 함께한 아버지가 있다. 한지에 붓펜으로 신·구약성경을 완필한 오세송(마티아·53·성남대리구 판교성프란치스코본당)씨. 그는 2009년 세례를 받자마자 성경필사에 돌입한 열정적 신자이기도 하다.
대입을 위해 독서실에서 파김치가 돼오는 아들을 기다리며 새벽까지 써내려간 그의 정갈한 글씨에는 부정(父情)이 녹아있다. 세례를 받으며 필사한 4복음서를 시작으로 6개월 간 신약을 완필하고 다시 2년 동안 구약을 완필했다. 당시 본당 소식지에 소개된 그의 글에는 성경필사에 대한 그의 솔직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왜 사서 고생일까. 아예 시작을 안 했으면 갈등도 없었을 것을. 먼저 시작은 신부님께서 성전 신축 전까지 한 번 써보라는 말씀과, 고 3 아들 녀석을 위해 기도한다 생각하고 써보라는 안사람의 말에 처음은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정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그는 한지와 붓펜을 골랐다. 신약은 7권, 구약은 더 큰 종이로 4권을 썼다. 오경, 역사서와 지혜서 등으로 묶어 성경을 정리해나갔다. 잘못 쓴 글씨에는 한지를 덧대거나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했다.
붓펜과 한지의 특성상 적당한 힘을 주어야 하는 탓에 팔에 붕대를 감은 적도 있었고, 600자루의 붓펜을 소요하기도 했다. 서재에서 쓰다가 갑갑해서 주방으로 나와 식탁에서 쓰고, 잉크가 떨어진 식탁을 사포로 갈아댔던 일도 이제 즐거운 추억이다.
“힘이 들기도 했지만 재미와 보람을 함께 느꼈어요. 아들과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썼는데, 시편을 쓸 때는 성무일도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언제 성경을 이렇게 다 읽어보겠어요.”
신앙을 알게 된 후 그는 가족의 소중함과 일체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뒤늦게 찾은 종교지만 성경필사를 하며 한층 돈독해진 신앙은 아내 하상옥(리디아·51)씨와 함께 본당에서 총무, 청소년위원장, 레지오 등을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는 훗날 붓펜이 아닌 붓으로 성경필사를 도전해보고자 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하루 빨리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처음 ‘왜 사서 고생일까’로 시작한, 본당 소식지에 실린 그의 글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온 것은 내 의지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려 인도된 것 같다. 주님! 이제 다 와갑니다. 끝까지 지켜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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