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부활, 한 처음에 계셨던 말씀, 말씀은 곧 하느님이심을 선포하며 기쁜 소식을 전했던 사도 요한의 벅찬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죽음으로 좌절한 인생에 벅찬 하늘의 팡파르를 들려주던 사도의 가슴이 오늘 우리처럼 환희로 가득했겠지요.
그런데 기쁜 부활절에 듣는 복음 말씀이 다소 우중충합니다. 못 견디게 주님이 그리워서 이른 새벽부터 무덤을 찾았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마음이 뒤숭숭했다니, 듣기 민망합니다. 그분을 따랐던 믿음인이 고작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니 실망입니다. 한 술 보태듯, 주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에 놀라서 달려갔던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에서도 그저 허탈해하는,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이 선해져 씁쓸하다는 얘깁니다.
그날 그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으셨을까 싶습니다. 새삼 우리네 믿음은 그들처럼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용사다운 모습을 ‘꼭꼭’ 챙겨 살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이 때문일까요? 사도 요한은 그날의 그 민망했던 일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모자란 모습들이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부활의 아침, 믿음의 계량 도구는 바로 ‘말씀’이라는 사실을 깊이 새겨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진정한 부활인이 되어 삶이 변화되었던 베드로 사도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세상의 세력에 겁을 먹고 주님을 부인하고 꽁무니를 빼던 졸렬한 사나이 베드로가, 주님의 무덤이 비어있는 걸 눈으로 보았음에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도통 기억하지 못했던 사나이 베드로가 ‘말씀을 깨달은 후’에 완벽하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빛의 일깨움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부활인의 모습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평화를 누리는 담대한 복음인의 모습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알고 있는 복음인입니다. 하늘의 것을 희망하는 삶이야말로 믿음의 핵심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빈 무덤이 곧 부활의 증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삶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살아내지 못하는 일들이 무수합니다. 숱한 문제 앞에서 당황하고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매사에 더럭 겁을 먹습니다. 희망의 말씀은 간데없고 격려의 말씀을 잊고 사랑의 말씀을 의심하며 걱정하고 근심하며 푸념을 해대기도 합니다. 매일 복음 말씀을 듣되 ‘아직 말씀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말씀을 깨닫지 못한 상태의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난제는 마치 믿음을 그분께 베푸는 아량정도로 취급한다는 점입니다. 내 앞에 닥쳐온 우환을 납득하지 못하고 항의하며 ‘믿어 준’ 일로써 주님께 큰 선심이나 쓴 줄로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에 생색을 내며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서운해 합니다. 이 때문에 원망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원인을 주님 탓으로 돌리고 모든 결과를 그분의 인색함이라고 몰아붙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주님을 섬겨도 ‘별 수가 없었다’며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할 기세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고난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을 잊은 겁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고난 뒤에 따라올 영광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까먹은 겁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낮아짐을 말씀하셨으며 그 뒤에 비로소 성취될 승격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의 앞뒤를 바꿔치기 한 겁니다. 모두 말씀을 건성으로 들은 결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깨닫지 못한 결과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니, 백날 손에 쥐여주신 축복을 복이라 여기지 못합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니 믿음으로 선물 받는 기쁨을 놓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부활인이 지녀야 할 핵심을 짚어주십니다. ‘말씀을 깨달으라’ 이르시며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라’고 청하십니다. 부활인은 “하느님 안에 숨겨져” 이제로부터 영원한 평화를 선물 받았다는 사실을 선포하십니다. 벅찬 부활, 이 기쁨을 베드로 사도처럼 깨달아 진정한 부활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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