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심을 찬미하며 사랑이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새벽녘, 언젠가 들었던 말마디가 귓전을 울렸습니다. “주님의 자비를 절절히 체험하기 위해서는 ‘좀더’ 죄를 지어야만 될 것 같다”던 농 섞인 음성이 귀에 생생했습니다. 혹여 이런 어이없는 착각을 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도무지 누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편 51편을 펼쳐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하느님의 자비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은총이 많아지도록 우리가 계속 죄 안에 머물러 있어야합니까?”(로마 6,1)라고 묻던 바오로 사도의 답변을 경청했습니다.
세상은 늘 불안합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쳐서 몸도 마음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매일의 삶이 전쟁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습니다. 때문일까요?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주님 사랑을 일깨워줍니다. 당신의 뜻에서 ‘따로 노는’ 우리를 일일이 챙겨주시는 주님 손길을 느끼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날,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이 두려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무서워서 문을 닫아걸고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주님의 부활소식이 전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못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겪었던 끔찍한 사건의 잔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을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귀에서는 주님을 죄인으로 몰아대던 군중의 음성이 쟁쟁했을 것이고 눈앞에선 주님을 죽이는 일에 망설임이 없던 사람들의 독기 어린 시선이 어른댔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금세라도 자신들의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은 불안을 떨쳐내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으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앞날을 불안해하며 마침내 의심하기까지 하는 우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좋고 좋은 말들을 다 제쳐두고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씀부터 건네신 이유가 선명히 집힙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당장에 딴 세상을 본 듯 기뻐했던 제자들의 모습을 닮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 말씀의 진수를 주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찾아오셨다는 사실에서 캡니다. 이야말로 세상을 두려워하는 우리 모두를 모른 척 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이며 우리의 허물을 고치시고 모자람을 채우시며 언제나 격려해주시는 자비심의 증거라 싶은 까닭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날 제자들처럼 당신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봅니다. 당신께서 치러 내신 사랑의 흔적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당신의 자비에 감격하며 합당한 찬미를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매우 특별한 평화를 선물 받습니다. 따져볼수록 횡재입니다. 한없는 자비심에 의한 죄의 용서도 감읍할 따름인데 평화에다 성령까지 얹어 보태주시다니, 황송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으로 당신의 전부를 내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 영혼에 당신의 마음을 쏟아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당신의 온 힘을 쏟아 넣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하느님의 능력을 보태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짓눌려 한숨짓고 걱정하느라 근심에 쌓인 우리 마음에 참 기쁨과 평화가 가득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복음의 삶에 일말의 착오가 없도록,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함께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모든 책임을 주님께서 질 것이라고, 고장이 나더라도 완벽한 애프터서비스를 할 것까지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은 진정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고 깊습니다. 주님의 자비로움은 이렇게 무한합니다. 그 무한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의 조처가 우리를 새 사람으로 탄생시켰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더 큰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부활의 존재로 거듭나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빛의 사명을 살아내는 일이 최고입니다. 그분처럼 사랑으로 변화된다면 제일입니다. 주님의 자비로 새로 빚어진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더더욱 주님께 사랑스럽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는 결코 “죄인이 필요하지 않다”(집회 15,12)는 말씀을 깊이 새깁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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